지난 2001년 초 이후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은 미국 경제의 디플레 가능성, 9ㆍ11테러 등으로 인한 경기위축 등을 우려해 6.5%에 달하던 정책금리를 1%로 인하하는 적극적인 금리정책을 구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뿐 아니라 글로벌 부동산ㆍ주식 등 자산가격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상승세를 나타냈고 미국 경제 또한 높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그러자 FRB는 다시 인플레이션에 초점을 맞춰 2004년 6월부터 정책금리를 5.25%까지 점진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지난해 9월, FRB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악화로 인한 경기침체를 우려해 다시 금리인하를 시작했다. 올해 1월 중에만 1.25%포인트라는 대폭 인하를 단행하면서 향후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도 열어놓았으며 미국 정부도 1,460억달러에 이르는 감세 등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위와 같이 미국 경제가 경험한 일련의 과정은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사례에서 그 유사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일본 경제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금리인하→부동산ㆍ주식 등 자산가격 급등→금리인상→버블붕괴→대출담보자산 가치하락에 따른 금융회사 부실화→경기불황→금리인하 및 재정지출 확대→국가 채무 폭발적 확대라는 최악의 악순환 함정에 빠졌다.
일본은 1980년 9%이던 콜금리 수준이 1987년 2.5%까지 하락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1980년 7,000대 수준이던 니케이지수는 1989년까지 40,000대 수준에 육박하는 급등세를 이어갔다. 일본 중앙은행이 자산가격 버블을 우려해 1989년 5월부터 기준금리를 2.5%에서 6%까지 인상하는 금융긴축에 나서자 니케이지수는 1989년을 정점으로 급락세를 시현했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부동산 버블도 붕괴되며 장기불황의 길을 걷게 됐다.
일본 중앙은행은 1991년 7월 금리인하를 시작으로 1999~2006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했고 정부는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등 경기부양에 나섰으나 일본 경제는 10년 넘게 장기불황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현재에도 니케이지수는 13,500에 불과하다.
정책금리 변동과 자산가격 급변 및 실물경제 영향이라는 큰 싸이클 차원에서 볼 때 일본과 미국의 사례는 비교해볼 만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일본의 과거 1990년대 버블붕괴 국면과 동일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지난 수년간 나타났던 미국의 부동산ㆍ주식 등 자산가격의 상승세가 1980년대 일본에 비해서는 완만한 속도로 진행됐다는 점과 미국의 은행들이 과거 일본 금융회사들과 달리 발빠르게 부실채권을 정리하면서 중동ㆍ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적극적인 투자를 유치하는 등 신속한 대처노력을 하고 있는 점, 그리고 최근 FRB의 적극적인 대응과 미국 행정부 및 의회의 경기부양 지원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미국이 과거 일본과 같이 장기 불황에 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수 의견이지만 월가 일부 낙관론자들은 경기침체가 발생하더라도 짧고 경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과거 일본의 사태는 일본 국내문제로 한정됐던 측면이 컸으나 미국의 경우 세계 최대 경제 대국으로서 기축 통화인 달러화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와 국제 자금흐름, 캐리 트레이드 포지션 청산 등 국제금융시장 전반과 실물경제에 막대한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차이점이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에 따른 미국의 금리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최근 주식ㆍ채권 및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매우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올 들어 미 당국의 금리인하 및 재정 부양책 시행 등 적극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투자은행의 4분기 실적악화, 카드론, 오토론 등 소비자 대출 부실 확대, 미 채권 보증사의 부실 우려 등으로 불확실성이 여전히 금융시장을 압박하고 있어 글로벌 금융불안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의 추가확산 가능성에 대해 보다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시장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성급한 낙관론이나 지나친 비관론은 금물이다. 보다 차분하고 보수적인 위험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