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이라크 전쟁의 태풍 영향권에 진입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않겠다고 강력하게 경고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는 연일 하락하고 뉴욕 증시도 지난주 이래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구매 의욕을 잃고 있으며, 기업들도 올해 미국 경제를 회의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견인차인 미국 경제는 전쟁의 짙은 먹구름에 가리워 지난해 4ㆍ4분기에 1% 이하의 저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올 1ㆍ4분기에도 슬럼프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21일 “이라크가 시간을 원하고 있지만, 시간이 다하고 있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UN 무기사찰단의 조사시한을 연장할 것을 주장하는 프랑스와 러시아, 중국의 요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반전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와 ABC 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70%가 유엔 사찰단의 조사시한을 연장할 것을 원했으며,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금융시장에선 2주전까지만 해도 유엔사찰단의 증거 확보 실패, 유럽국가의 신중한 자세, 반전운동 확산 등으로 전쟁 가능성이 낮게 평가됐으나, 이번주 들어 전쟁 불안도가 높아지고 있다. 달러는 연일 하락, 22일 유로화에 대해 1유로당 1.07 달러를 넘어섰으며, 뉴욕 증시에는 아직도 거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먹혀들고 있다. 국제 유가는 뉴욕상품거래소에서 한때 배럴당 35달러를 넘었으나, 베네주엘라 유전근로자들이 일부 파업을 풀고 복귀할 것이라는 뉴스에 33달러로 진정됐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실물경제로 이어지고 있다. 미시건대의 소비자심리지수가 지난해 12월 86.7에서 1월에는 83.7로 하락했으며, 지난 12월 미국의 산업생산이 전월대비 0.2% 하락했다. 대기업들도 전쟁의 불안감으로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지난해 4ㆍ4분기 수익을 월가 기대치만큼 냈으나, 세계적 설비과잉이 해소되지 않아 올해 수익전망을 불투명하게 보았다. 인텔도 올해 35억~39억 달러의 투자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는 월가의 예상액 40억 달러보다 적은 규모다. 불안할때 소비와 투자를 보수적으로 해야 한다는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