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新人脈] <5부>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사람들-금융권 고대인맥

어윤대·이팔성·김승유 회장등 민간 금융권 '호랑이'가 장악


최종구·김장호·추경호씨 금융관료계 포진
남경우·손영환씨등 최고 경영자에 올라

김왕기·박동창·황성호·차문현·이휴원씨등
KB·우리·신한등 금융지주 계열사 수장에

보험·증권업계선 권처신·김봉수씨등 활약
"제가 대학을 다니던 지난 1970년대만 해도 취업준비생에게 은행이나 금융회사는 최고 선망의 직장이 아니었어요. 은행원 초년병 시절에는 상업부기나 암산ㆍ타자에 능했던 상고(상업고등학교) 출신 동료에게 밀려 고문관 취급을 받았죠. 그런데 이제는 어느덧 상고가 아닌 대학을 연고로 금융인맥을 이야기하는 시절이 됐군요." 국내 굴지의 은행계 금융지주사 임원이 전하는 우리나라 금융학맥의 단편이다. 그의 이야기가 시사하듯 금융인이 우리 사회에서 힘있는 엘리트로 떠오른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전까지 금융은 중후장대한 제조업을 보좌하는 금전창구 정도로 치부됐고 금융기관 인맥도 경제계의 조역으로 푸대접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경향은 1990년대를 전후로 흐름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우리 경제의 개방화와 서비스 산업 발달, 산업의 전산화 및 정보화로 금융권에서 고급인재에 대한 수요가 늘자 대졸 출신이 은행 등에서 상고 출신을 제치고 약진하게 됐다. 금융권에서 대학의 학연이 인맥의 한 요소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여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금융권에서도 서울대와 연세대ㆍ고려대ㆍ성균관대 출신이 고위공무원과 임원 자리를 장악해왔다. 이중 서울대가 조금 더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각 대학 학맥 간 힘의 균형이 비교적 팽팽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고대 출신이 상대적으로 더 약진하는 등 역학구도에 변화가 일고 있다. ◇금융 당국의 고대 인맥들=우리나라의 초창기 금융관료는 대부분 재무부 출신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러던 것이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가 설립되면서 금융관료의 인맥이 뚜렷하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서울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관료계에서도 고대 인맥의 활약은 만만치 않았다. 2008년까지 총 6명에 이르는 금융감독위원장 중 고대 출신이 3명(2대 이용근 위원장과 3대 이근영 위원장, 6대 김용덕 위원장)이나 배출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이분화된 현재의 금융감독체제에서도 고대 출신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금융위에서는 상임위원 2석 중 1석을 고대 경영대 출신의 최종구 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이 차지했다. 금감원 임원진 중에는 김장호 부원장보가 고대 경영대학원 출신이다. 추경호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도 고대 출신으로 재경부를 거쳐 금융위원회 정책국장까지 지낸 만큼 범금융관료 인맥으로 꼽을 수 있다. ◇금융권은 '호랑이'가 장악=사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호랑이로 상징되는 고대 출신 파워가 한층 더 빛을 발하는 곳은 금융 당국보다 민간금융계다. KB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ㆍ하나금융지주 등 이른바 4대 은행계 금융지주사 중 3곳의 회장을 고대 출신이 석권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이 대통령의 오랜 지기이기도 하다. 이중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현정부 출범 이후 경영사령탑에 앉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은행ㆍ보험ㆍ증권ㆍ카드업계를 막론하고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핵심임원 자리에는 고대 출신 기업인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KB지주 계열사 중에서는 남경우 KB선물 사장, 손영환 KB부동산신탁 사장이 고대 출신 CEO로 꼽힌다. 또 KB지주 내에서는 어 회장 체제 출범 이후 영입된 김왕기 부사장이 고대 졸업자다. 이 회사의 박동창 부사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왔지만 고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해 고대 인맥의 범주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 그는 1952년 경남 ?양에서 출생했으며 어 회장의 경기고 7년 후배일 뿐 아니라 고대 경영대학원 재학시절 어 회장이 지도교수를 담당했다. 우리지주 계열사 CEO 중에서는 경북 상주 출신의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이 고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차문현 우리자산운용 사장은 고대 경영대학원 출신이다. 우리지주 사외이사 중에서도 고대 출신이 2명(이두희ㆍ이영호 사외이사) 포함돼 있다. 하나지주 이사회에서는 고대 출신으로 검찰총장까지 지낸 김각영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이 회사 유병택 사외이사도 고대 동문이다. 아울러 외부에서 스카우트된 이강태 하나SK카드 사장도 안암동에서 석박사 학위를 땄다. 신한금융지주에서는 계열사인 신한금융투자 이휴원 사장이 고대 출신이다. 이 사장은 최근 지주 경영진의 거취 문제가 거론되면서 주목 받는 차기 주자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권처신 한화손해보험 대표가 대표적인 고대 동문이다. 충북 출신(1951년)으로 삼성화재를 거쳐 신동아화재 사장, 재일화재 대표 등을 역임했다. 증권업계에서는 키움증권 부회장까지 지냈던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고대 법학과 졸업자다. 고대 경제학과를 나온 유흥수 LIG증권 사장은 금감원 부원장보를 지낸 경력을 갖고 있다. ◇고대경제인회 위상 급상승=금융계에서는 고대 출신이 민간금융업계에서 잘 나가는 배경으로 고대경제인회의 후광을 꼽고 있다. 이 단체는 고대 출신 경제계 인사와 경제 관련 고위공무원ㆍ경제학자 등의 모임으로 회원 수가 800명에 육박한다고 전해진다. 이 대통령도 현대건설에 몸 담았을 당시부터 고대경제인회 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승유 회장은 물론 재계의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이재현 CJ 회장 등이 고대경제인회의 간판급 명사로 꼽힌다. 심지어 서울대 출신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올해 고대경제인회에서 마련한 조찬행사에 강연자로 참석해 고대인의 시대정신을 극찬했을 정도로 이 단체의 위상은 무시하기 어렵다. 너무 잘 나가면 역풍을 맞기도 하는 법. 실력과 인망을 갖췄음에도 현정권과 막역한 고대 학맥에 기댄다는 오해에서 비켜나 있기 위해 은인자중하는 금융인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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