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기업들의 '골드러시'

최근 세계적 유통기업인 월마트와 까르푸가 한국 시장에서 백기를 들었다. 세계적 유통망과 인프라를 가지고 한국 시장에서의 승리를 자신하며 입성했던 모습과 달리 고개를 떨구고 떠나갔다. 한국에 진출했을 때 그들은 아마 급성장하던 한국 시장에서 충분한 수익을 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비단 유통업체가 아니라도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라도 진출하는 것이 바로 글로벌 시장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많은 국내 기업들이 짝사랑하듯 중국으로 몰려갔다. 재정경제부 자료에 의하면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 중 45.8%는 중국에 몰려 있고 이들의 90%는 제조업체이다.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중국 진출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진 느낌이다. 마치 미국 초기 개척기의 ‘골드러시’를 연상시킨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금을 캘 수 있다고 믿고 서부로 향하는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이 나쁜 선택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중국 진출의 큰 이유 중 하나가 중국의 값싼 노동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 듯해 아쉽다. 내가 아는 어떤 기업가는 최소한 값싼 노동력이 주는 혜택이라도 건질 수 있다고 중국을 보험처럼 말하기도 한다. 엄청난 시장경쟁 속에서 가격 경쟁력은 시장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중국 진출은 거부하기에 너무 달콤하다. 마치 황금의 유혹처럼. 그러나 최근 세계적 컨설팅사인 매킨지의 보고서는 이와는 조금 다른 시사점을 준다. 미국 내 1,50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제품 가격을 1% 내리면 8%의 영업이익이 줄고 5%의 가격 인하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19%의 매출 증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가격 경쟁력 확보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중국에 투자한 우리 기업 다섯 곳 중 한 곳은 중국 시장에서 재미를 못 보고 물러났다. 가격이 아니라면 수출 주도의 국내 산업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한국의 대표적 기업이 만드는 국산차 1대를 팔아 남기는 대당 이익은 명차로 이름난 BMW의 38%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결국 관건은 가격이 아니라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제품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비슷한 용도의 제품이 쏟아질수록 소비자들은 고품질ㆍ고품격ㆍ고부가가치 제품을 선택하려고 한다. 치열한 기술개발과 고민이 부족하다면, 그래서 소비자에게 자신들의 제품을 꼭 다시 사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브랜드 이미지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사람들이 소위 ‘명품’이라고 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의 대표로서 나는 왜 우리나라를 대표할 세계적 명품은 없는지가 아쉬울 때가 많다. 내가 말하는 명품이란 단순히 비싼 가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조백자ㆍ나전칠기 등은 세계가 감탄할 명품이지만 가격만으로 그것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5,000년 역사의 문화적 저력을 보여줄 명품이 있다면, 그래서 더 저렴한 제품이 많더라도 기꺼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선택하게 만드는 한국적 명품이 있다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휘슬러만 해도 160년 동안 그것도 독일에서만 주방용품을 생산해왔다. 보다 저렴한 생산기반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가격으로 승부하지 않아도 전세계에서 팔리고 있다. 우리 제품은 단지 뛰어난 기능과 디자인만 갖춘 것이 아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일의 ‘문화적 저력’과 ‘장인정신’이 숨어 있는 것이다. 지금 소비자들은 변하고 있다. 조그만 제품 하나까지 가격을 꼼꼼히 비교하던 소비자들도 사고 싶은 이유가 명확해지면 지갑을 여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이제 좋은 제품이나 완전한 서비스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비자들은 제품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까지 구매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다. 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이나 기업들도 많다. 하지만 일부 업체들은 골드러시의 행렬을 따라가기에 바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그들이 황금을 발견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나는 오히려 우리 기업들이 다른 나라 기업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가치’를 팔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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