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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장한경(40)씨는 지난 주말에 가족 나들이를 다녀왔다. 산과 들에 봄이 찾아왔지만 일상에 지쳐 주말이면 휴식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면서 미루던 가족 소풍을 위해 집을 나선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지금도 바닷속에 있는 실종 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상황이 단순히 남의 얘기로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 씨는 "평소 무덤덤했던 자식과 부인의 소중함이 요즘엔 남다르게 다가온다"며 "여러 핑계로 그동안 가정에 소홀했던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집어 삼킨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28일로 13일째를 맞으면서 국민들의 일상에도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여객선사와 회사 오너에 대한 분노, 그리고 정부의 무능에 대한 야속함 못지 않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이 국민들 가슴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두고 있는 강재훈(38)씨도 요즘 사고뭉치로만 여겼던 아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울컥하는 생각이 든다. 강 씨는 "얼마전 저녁 늦게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아들이 평소처럼 온라인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여느 때 처럼 꾸중을 할 수 없었다"며 "대신 아들을 한번 꼬옥 안아주었는데 영문을 모르는 아들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더 찡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경기도 안산시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 불과 닷새만에 14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다녀가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애도한 것처럼 그저 말썽만 부리는 천덕꾸러기로 여겨졌던 청소년에 대한 편향된 시각도 바뀌고 있다.
강정호(67)씨는 "며칠 전 지하철에서 웃고 떠드는 중학생들을 봤는데, 평소 같으면 '버릇없는 놈들'이라며 꾸지람이라도 했을텐데 왠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며 "오히려 물속에 있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세월호 사고에서 보여준 어른들의 실망스런 행동이 생각나면서 되레 내 자신부터 되돌아 보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 선생님들이 보여준 거룩한 희생정신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입시시험에만 치우쳐졌던 사제지간의 관계에도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사고에서는 단원고 선생님 14명중 단 3명만 구조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단원고 교감은 참사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고 이틀 만에 "저승에서도 희생당한 제자들의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경기도 일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담임을 맡고 있는 백모(42) 교사는 "세월호 사고에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함께했다는 점에 대해 그동안 '꼰대'나 '쌤'으로 선생님을 가벼이 여겼던 학생들이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단순히 지식을 주고 받는 사이를 넘어 위기의 순간에서도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스승과 제자 관계를 되돌아 보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가 우리에게 만연된 안전불감증 때문이라는 여론도 높아지면서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강남권에서는 자녀들의 유학이나 이민을 서둘러 추진하는 학부모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대치동에서 입시컨설팅 학원을 운영하는 하모(43) 원장은 "지난주에는 학부모들과 자녀 진학 컨설팅을 하는 와중에 유학 등을 앞당겨서 추진하려는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이번 사고가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되면서 안전한 선진국에서 자녀를 키우고 싶다는 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털어놨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뼈아픈 교훈으로 승화시켜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가족 등 기본적인 공동체 가치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안타까운 건 우리 사회가 대형 참사가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공생에서 존재의 가치가 생겨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