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뉴패러다임 공유가치경영] <6> 건전 소비사회 만드는 '기업 공생'

대형마트·중기 "제조서 유통까지 동행… 가격거품 확 뺐죠"
이마트·쟈뎅 손잡고 반값커피 등 출시 인기몰이
홈플러스는 세븐브로이 '에일맥주' 판로 열어줘
롯데마트·옥스포드도 '통큰 블록'으로 매출 쑥쑥

윤영노(오른쪽) 쟈뎅 회장과 최성재 이마트 식품본부장이 ''이마트 반값 원두커피''에 쓰이는 원두의 로스팅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제공=이마트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선행을 베풀되 겸손할 것을 강조한 신약성서의 한 구절이다. 이는 기업에 사회공헌활동(CSR)을 강조하는 기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부는 하되 생색은 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통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한 단계 더 나아간 공유가치경영(CSV) 시대를 맞아 이 구절도 180도로 달라졌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함께 해야 한다'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명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국내 유통업계에서 신업태로 첫선을 보인 뒤 벌써 20년이 지난 대형마트 업계에서도 CSV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했다. 지난 1993년 이마트가 서울 도봉구에 창동점을 열었을 때만 해도 대형마트는 '골목상권 침해의 주범' '유통업계의 갈등 양산자'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중소기업의 판로를 열어주는 든든한 동반자로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더해 대형마트와 중소기업의 상호협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과 분위기 조성 등과 더불어 왜곡된 유통단계와 가격거품을 바로잡아 건전한 소비사회를 만드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두커피 전문업체 쟈뎅과 이마트의 관계다. 쟈뎅은 크라운제과 창업주인 고 윤태현 회장의 아들 윤영노 회장이 1984년 설립한 국내 첫 원두커피 업체다. 윤 회장은 1988년 서울 강남에 커피전문점을 열고 본격적인 사업확장에 나섰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해외 브랜드가 국내에 잇따라 진출하면서 5억원에 달하던 연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위기에 내몰렸다. 회사 생존을 위해 윤 회장은 커피믹스 시장으로 눈을 돌렸지만 판로가 문제였다. 마침 쟈뎅의 경쟁력을 눈여겨본 이마트가 판로를 열어주면서 쟈뎅은 이마트와의 거래 첫해에만도 매출 2억원을 거뒀고 이는 향후 회생의 발판이 됐다.

양사의 동행은 이마트 자체 브랜드(PB) 상품 개발로 이어졌다. 2006년 이마트는 대형마트 업계에서 최초로 쟈뎅에 생산을 위탁한 '이마트 커피믹스'를 선보였고 2011년에는 '반값 원두커피'까지 출시했다. 이마트의 반값 원두커피는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품질로 고객의 호평을 받으며 100여종에 달하는 원두커피 상품 중 매출 상위권을 휩쓸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에만도 판매량 20만개를 기록했고 쟈뎅의 연매출은 500억원으로 늘어났다.

최성재 이마트 식품본부장은 "쟈뎅이 공급하는 이마트 반값 원두커피 가운데 '브라질 세라도'는 재구매율이 17%에 달하는데 이는 이마트 PB 상품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이마트가 커피 원산지에서 생두를 통째로 들여와 쟈뎅에서 로스팅을 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우수한 품질의 커피를 훨씬 저렴한 값에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마트가 원재료를 직접 구매한 뒤 중소기업에 가공과 생산을 위탁하는 방식은 다양한 제품에 적용되고 있다. '이마트 마테차'는 이마트가 마테 원료를 수입해 중소기업인 대한다업에 가공을 맡긴 경우다. 이마트는 원재료를 대량 구입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대한다업은 공장설비 가동률이 높아져 수익이 추가로 늘어났다. '이마트 메밀차' 역시 이마트가 원재료를 수입한 뒤 국산차 제조업체 담터에 생산을 의뢰했다.

최근에는 벨기에와 캐나다에서 수입한 돈육을 육가공 전문업체 오뗄이 생산한 '웰메이드 베이컨'과 '웰메이드 소시지'까지 출시했다. 이마트가 호주산 콩을 수입해 중소기업 자연촌에 생산을 맡긴 '상생 두부' 역시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노은정 이마트 고객분석팀장은 "기존에는 대형마트에 자체 브랜드 상품이 입점하려면 원료 수출업자, 국내 수입업자, 도매상, 소매상을 각각 거쳐야 해 절차가 복잡하고 가격도 높아지는 단점이 있었다"며 "이마트가 원재료를 직접 구입한 뒤 중소기업에 제조를 맡기는 방식이 새로운 공유가치 창출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와 중소기업의 CSV는 업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홈플러스는 2012년 세븐브로이의 에일 맥주 '세븐브로이 인디언페일 에일'을 출시했다. 중소기업 최초로 맥주 제조면허를 획득한 세븐브로이는 제품을 내놓자마자 마니아층의 호평을 받았지만 중소기업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판로확보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홈플러스는 중소기업의 시장 안착과 마케팅 지원을 위해 세븐브로이 맥주를 수도권 30개 매장에 선보였고 지난해부터 전점으로 확대했다. 세븐브로이는 라거 맥주 일색이던 국내 맥주 시장의 저변을 넓히면서 국내 프리미엄 맥주 분야 매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중소 완구업체인 옥스포드는 롯데마트를 만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롯데마트는 2011년 옥스포드와 손잡고 가격을 기존 완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춘 '통큰 블록'을 내놓았다. 레고를 비롯한 글로벌 완구 브랜드가 국내 시장을 독식하며 위기를 맞은 옥스포드와 경기침체로 대형마트를 외면하는 고객의 발길을 되돌리려는 롯데마트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이룬 결실이었다. 출시되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모은 통큰 블록은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이 13만여개에 달한다.

대형마트의 활발한 CSV 활동은 국내 유통산업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최근 글로벌 유통기업 100위에 롯데와 신세계가 진입할 정도로 유통업체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아직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경쟁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제 시작단계인 CSV 활동이 대형마트의 글로벌 진출 가속화와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이끌어내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유통학회장인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형마트와 중소 협력업체가 거래방식을 투명하게 설정하면 자연스럽게 신뢰관계가 구축될 수밖에 없다"며 "공정한 거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 제품 경쟁력과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공유가치 경영의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