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늘어도 맡길 곳 없네"…돈흐름 짧아지고 불확실성 심화

[길잃은 돈 어디로]
올들어 외국인 자금 밀려와 시중금리 지속 하락
증시 탄력 둔화·부동산은 부담…단기예금만 돈몰려
"美 양적완화·금통위 발표이후 방향성 윤곽" 기대




최근 돈이 움직이는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멀쩡하다. 주식시장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부동산시장도 예전과 같은 급락 상황에서는 벗어났다. 하지만 현재의 금융시장을 '정상 패턴'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계속된 저금리와 밀려드는 외국인 자금 속에서 돈의 절대적인 양은 늘었는데 정작 돈을 쥔 사람들은 어디에 맡겨야 할지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의 한 핵심관계자는 "외형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굉장한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며 "자금 시장이 겉보기에는 균형이지만 판판한 균형이 아니라 살짝 건드리면 넘어가는 국면"이라고 표현했다. ◇'트리플 악재'가 시장 왜곡 잉태=올 들어 금융시장은 사실 외국인의 일방적인 힘에 휘둘려왔다. 지난 1월 56조원이던 국내 채권시장 내 외국인 보유 자금은 9월 말 74조6,200억원까지 올라갔고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달에도 올 들어 가장 많이 늘었다. 가뜩이나 기준금리가 저공비행을 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자금 유입으로 채권금리는 계속 내려갔다. 7월 말 3.88%였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말 3.24%까지 내려앉았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금리를 더욱 끌어내리면서 물가를 반영한 실세금리는 마이너스 상황으로 빠져들었지만 정작 돈은 더욱 갈팡질팡해졌다. 주가는 단기간에 과도하게 올라가 따라가기 힘든 반면에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확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 보니 돈이 갈 곳을 찾기 힘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불거진 악재가 바로 경기지표의 하락이다. 그나마 상반기에는 경기지표가 워낙 좋게 나오고 정책도 경기 부양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위험 투자에 대한 자신감을 어느 정도 갖게 해줬지만 최근에는 실물지표의 상승 흐름이 무뎌지면서 돈의 흐름 역시 다시 한번 주저하는 국면으로 바뀐 것이다. ◇짧아지는 돈의 흐름… 곳곳 이상 징후=이런 상황에서 돈의 흐름은 자꾸만 왜곡된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은행이 자체 파악한 결과를 보면 월초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좀더 봐야 하지만 최근 들어 6개월 미만의 단기 정기예금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은행을 향하는 돈의 흐름이 부쩍 많아진 것이 눈에 띈다. 통상 경기가 살아나고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저금리 상태가 계속되면 위험 투자가 그만큼 많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은행으로 돈이 밀려오는 것이다. 국민ㆍ신한ㆍ우리은행 등 3대 시중은행의 총수신은 지난달 말 현재 494조5,813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13조9,187억원이나 급증했다. 시중은행의 총수신이 석달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것인데 증가액 면에서는 2월의 17조5,294억원 이후 8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증시에서도 상승 탄력이 좀처럼 쉽게 붙지 못하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너무 많이 올라 자칫 상투를 잡을 수 있다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 때문에 펀드 잔액은 주가 강세에도 감소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주식형펀드 잔액은 9월 3조644억원이 줄어든 데 이어 지난달에도 1조6,343억원이 감소했다. 개인뿐만 아니다. 기업들 역시 현금 보유분을 갖고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짧게 굴리고만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단기 예금인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을 잠시 파킹(보관)해주겠다는 기업들이 많다"고 전했다. ◇선진국 양적 완화와 금통위… 흐름 돌릴까=그렇다면 이런 왜곡된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일단 고비는 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양적 완화 규모가 곧 발표되면 어떤 식으로는 단기적인 방향성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양적 완화책이 발표되면 시장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흐름 전체를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양적 완화 규모가 적더라도 원ㆍ달러 환율의 하락 기조는 중장기적으로 계속될 것이고 이를 타고 외국인 자금이 추가로 밀려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친 뒤 외국인 자금 유출입 정책을 추가로 내놓는다고 하지만 이를 통해 전체적인 물꼬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더욱 주목 받는 것이 바로 이달 16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다. 기준금리의 방향에 따라 돈의 방향성이 잡힐 것이라는 뜻이다. 대형 이벤트들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돈의 흐름도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