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한정화 중소기업청장

창업은 '아웃라이어 게임'… 고급인력 끌어들일 플랫폼 확 늘릴 것
맞춤형 지원 통해 '데스밸리 구간' 기업 생존율 높이고
일정 기간 월급 받으면서 창업 준비하는 안전망도 검토
빅데이터 기반 과밀화지수 만들어 음식점 등 쏠림 차단



"창업은 '애버리지 플레이어(평균의 사람들) 게임'이 아니라 '아웃라이어(Outlier·보통 사람의 범주를 넘어 성공한 사람) 게임'입니다. 창조경제의 성공 여부는 아웃라이어들이 창업에 뛰어들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한정화(사진) 중소기업청장은 7일 서울 서초동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급 인재가 창업판에 들어오게 해야 성공 사례가 많이 나오고 이로 인해 다시 좋은 인재가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된다고 강조했다. 2013년 3월 중소기업청장에 취임한 후 한 청장이 추진한 대부분의 정책은 아웃라이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창업 플랫폼 구축이다. 재도전 생태계와 투자 중심 스타트업 금융 분위기 조성, 스톡옵션 등을 통한 보상체계 구축 외에도 불균형·불공정·불평등 등 이른바 '3불 철폐' 역시 건전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우수 인재들의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수 있다는 신념 속에 추진됐다. 중기청은 7월 유관부처 합동으로 창조경제 후속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엔젤투자 소득공제 혜택 확대와 스톡옵션 관련 양도소득세 적용 한도 확대, 벤처기업 인수합병(M&A) 시 대기업 계열사 편입 유예기간 연장 등 다양한 대책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후속대책의 핵심은 시장 플레이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애로사항을 조속히 해결해 정책 체감도를 높이는 데 있다.

한 청장은 "정부가 창업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신념이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여건은 벤처캐피털의 정부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엔젤투자 풀도 빈약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최근 2년간 구축한 민관 협력 플랫폼이 서서히 효과를 내고 있는 만큼 창업 플랫폼 확충을 통해 시장 체감도를 높일 수 있는 정책적 보완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급인력이 과감하게 창업에 뛰어들게 하려면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지원프로그램(TIPS) 같은 창업 플랫폼을 확충해 창업 도약기 생존율을 높여야 합니다."

'생존율' '고급인력' '안전망' '플랫폼'. 한 청장이 인터뷰 내내 가장 자주 입에 올린 단어들이다. 한 청장이 꼽은 중기청의 올해 최우선 과제는 데스밸리(death valley) 극복이다. 기술사업화 단계인 창업 3~7년차에 들어선 기업 두 곳 중 한 곳이 적자의 늪에 시달리다 폐업에 이르는 구간이다. 한 청장은 데스밸리의 원인으로 높은 진입장벽에 따른 시장창출 실패와 불완전한 자금 생태계를 꼽았다. 한 청장은 "실리콘밸리에서는 이 시점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은 엔젤투자나 벤처캐피털 투자를 통해 위기를 넘기지만 정책자금 의존도가 높은 국내에서는 '금융자본에 의한 옥석 가리기' 자체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며 "고급 인재들이 가장 리스크가 높은 영역에 도전하도록 하려면 안전망을 통해 실패 가능성을 줄여주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중기청은 올해 창업지원 사업의 연계성을 높여 단계별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창업도약패키지' 제도를 신설했다. 올해 총 325개 창업기업의 사업화를 지원하는 이 제도는 창업기업의 모럴해저드 방지를 위한 자기부담금 납입 의무를 과감하게 없애고 민간 멘토단의 매칭 투자와 시장전문가들의 맞춤형 멘토링 등 차별화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특히 맞춤형 교육 기간을 기존 10개월에서 3년으로 늘려 단기 성과 대신 중장기적 성장전략에 따라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한 청장은 "무엇보다 개별적으로 추진됐던 창업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한편 정부 지원과 민간의 투자와 멘토링이 결합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설명했다.

한 청장이 취임 이후 공을 들였던 팁스(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역시 대표적인 민관협력 창업 플랫폼이다. 7월까지 서울 역삼·강남 일대에 팁스타운 조성이 완료되면 스타트업 창업지원기관과 벤처캐피털 등이 하나의 미니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협력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내년까지 160개 창업팀과 10여개 투자사, 유관기관 등을 끌어들여 상주인원 3,000여명 규모의 벤처타운을 형성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해부터 전국 각지에 마련한 창조경제혁신센터 역시 중기청의 다양한 창업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장이자 대기업의 강력한 플랫폼을 공유할 수 있는 지역 거점으로 활용하게 된다. 한 청장은 "팁스타운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창업 플랫폼 구축을 위한 하드웨어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며 "성장 모멘텀에 목마른 대기업들로서도 민간 창업기업들의 혁신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와 연계해 오는 7월 초 출범하는 공영홈쇼핑은 연간 2만여개에 달하는 혁신제품을 데뷔시키고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실적을 쌓는 유통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된다. 히트 제품으로 검증됐다고 무한정 팔지 않는다. 일정 기간 판매 후 다른 홈쇼핑이나 국내외 주요 유통망에 진입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한 청장은 "기존 홈쇼핑보다 10%포인트 이상 수수료를 낮춰 기업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다른 민영 홈쇼핑들을 대신해 혁신제품의 성공 가능성을 검증해준다는 점에서 업계와 윈윈할 수 있다"며 "공영 TV 홈쇼핑을 중심으로 모바일·인터넷 등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통합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고 아이디어 상품을 모아 파는 한국판 도큐핸즈도 연내 오픈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연구기관이나 대기업에서 일정 기간 월급을 받으며 창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샐러리맨 창업준비제도(가칭)'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한 청장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는 연구원 창업 독려 차원에서 일정 기간 월급을 받으며 창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이를 대기업이나 연구기관에서 시행한다면 전문기술자들이 보다 쉽게 창업을 결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창조경제 정책의 시장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 7월에는 유관부처 공동으로 창업대책이 새롭게 나온다. 한 청장은 "우수한 창업자도 중요하지만 좋은 인력이 창업기업에 유입되는 것도 중요하다"며 "좋은 인재영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스톡옵션 제도가 제 기능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매입가격을 낮출 수 있도록 한다든지 세금을 납부할 때 양도소득세로 납부할 수 있는 한도를 현재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늘린다든지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번 대책을 통해 엔젤투자자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행 제도로는 1,500만원까지 100%, 5,000만원까지 50%의 소득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나 한도를 각각 3,000만원, 1억원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 청장은 코스닥시장 분리독립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한 청장은 "논란은 여전하지만 코스닥시장이 유가증권시장의 2부 시장으로 전락한 데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며 "기술창업기업들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서는 코스닥시장 분리독립을 통해 제 색깔을 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상반기 중 국회 법안 제출을 추진 중인 성실실패 가이드라인 역시 창업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 작업이다. 한 청장은 "우수 인력 풀은 제한적인데 기술력과 경험을 가진 이들을 낙오자로 만드는 경제구조 속에서는 고급인재의 창업시장 진입이 이뤄질 수가 없다"며 "정직한 실패자들을 가려내 신용불량과 대출제한 등의 규제를 풀어주는 것은 물론 채무조정 혹은 분할납부를 허용하고 미납 세금에 대한 가산금 부담을 낮춰주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회형 창업 비율을 끌어올리는 일 역시 주력하는 부분이다. 2013년 기준 국내 창업의 59%가 도소매업과 음식업 등 생계형 창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높은 반면 기술기반 창업은 전체의 23.3%에 그치고 있다. 한 청장은 "보통 창업기업의 5년차 생존율이 30%라고 하면 기술 창업은 이보다 10%포인트 높고 여기에 정부 지원이 더해지면 10%포인트가 더 높아진다"며 "우수 기술인력의 창업을 지원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음식점업이나 숙박업같이 과밀업종에 창업자가 쏠리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기청은 이를 위해 빅데이터 기반의 과밀화지수를 개발해 음식점 등 업종에서 지나친 창업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최근 안팎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관련해서는 자율합의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청장은 "적합업종을 법적으로 강제하면 무역분쟁의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 고유업종제도의 부작용을 답습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국내 560만 자영업자의 40%가 최저임금 이하의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하는데 이들이 무너지게 되면 결국 복지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고 그 재원은 역시 세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국민들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He is…


△1954년 광주광역시 △1973년 중앙고 졸업 △1977년 서울대 경영학과 △1983년 미국 조지아대 경영대학원(MBA) △1988년 미 조지아대 경영학 박사 △1989년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1999년 한국벤처연구소 소장 △2005년 한국중소기업학회 회장 △2010년 한국인사조직학회 회장 △2013년 중소기업청장



벤처 생태계 활성화·성장사다리 구축 진두지휘 '최장수 중기청장'


한정화 청장은


중소기업청장 발탁 당시 한정화 청장은 '중소·벤처기업 분야의 핵심 브레인'으로 꼽히는 교수였음에도 우려의 시선이 없지 않았다. 한국벤처산업연구원장과 한국중소기업학회장 등을 거치며 중소업계와 창업 현장에 기업가정신을 전파했던 대표적인 학자지만 관료사회에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과 창업진작을 최우선 과제로 내건 상황에서 '창조경제' 추진체 역할을 할 중기청장에 학자 출신을 앉히는 것은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한 청장이 이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계에서도 현장 경험이 풍부한 학자로 통했을 정도로 업계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데다 현장 감각과 이론을 바탕으로 한 그의 추진력도 남달랐다. 관료주의에 물들지 않은 탓에 국무회의에서도 제 목소리를 냈고 그의 소신 덕에 더불어 중기청 직원들의 기도 살아났다.

그의 추진력은 굵직한 정책들로 입증됐다. 범정부 차원에서 힘을 실어줬던 벤처창업 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이나 성장사다리 구축 등을 빼더라도 중견기업법과 중소기업기술보호법 제정, 공공조달 최저가 낙찰제 폐지 등은 업계에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정책들이다. 중소·중견업계에서 숱하게 제도 마련을 요구했던 숙원사업이었던 탓이다.

이 같은 성과를 발판으로 한 청장은 취임 만 2년을 넘어서며 지난 4월 역대 최장수 중기청장이 됐다.

지난 2년여간 최고의 성과를 꼽아달라는 주문에 한 청장은 선뜻 한 가지를 골라내지 못했다. 취임 두 달 만에 유관부처와 마련한 '벤처창업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은 물론이고 온갖 논란을 빚으면서도 추진한 제7홈쇼핑(아임쇼핑) 설립, 중견기업법·기술보호법 등 굵직한 법안 제정 등 모두 한 청장이 애정을 쏟았던 정책 사안들이다.

하지만 한 청장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재도전 생태계 구축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 청장은 "창업자 연대보증 문제는 금융감독당국의 노력으로 상당 부분 진도가 나갔지만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 탓에 이미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기업인들의 부채부담을 덜어주고 조기에 신용회복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며 "상반기 중 성실실패 기업인을 선별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안전망을 마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권욱기자

대담=오철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