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조선시대 왕실 288년간의 현장 담아

■ 승정원일기, 소통의 정치를 논하다 (박홍갑ㆍ이근호ㆍ최재복 지음, 산처럼 펴냄)


'승정원일기'는 500여년 역사를 다룬 '조선왕조실록'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288년 동안의 기록이지만 양으로는 오히려 5배 정도다. 중국에서 가장 방대한 역사 기록물이라는 '명실록(明實錄)'보다도 많은 양이다. 조선왕조실록이 시정기(時政記)나 사초를 토대로 편집한 2차 자료이자 활자 인쇄본인 것과 달리 승정원일기는 현장에서 필사본으로 받아 쓴 1차 사료이다. 실록이 최종 보고서라면 승정원일기는 속기록인 셈. 왕조실록은 임금조차 열람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승정원일기는 언제든 참고할 수 있는 자료여서 국정 운영의 전례나 개인문집에도 널리 애용됐으니 후대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에 '승정원일기'는 국보 303호로 지정됐고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조선시대 승정원은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해, 국왕의 명을 들이고 내보내는 왕명 출납을 기본 임무로 한 기관이었다. 보고와 결재 사항을 자세히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날씨에서부터 국왕이 하루 동안 진행한 갖가지 일들, 각종 회의와 지방에서 올라온 상소 등 모든 내용을 정리해 책에 담았다. 영조 33년(1757년) 2월5일 '승정원일기'를 보자. 영조가 "나이가 차도 결혼하지 못한 사람의 기준을 몇 살로 정함이 좋겠는가?"라고 묻자 선혜청 당상 민백상이 "남자는 30세로 하고, 여자는 25세로 해야합니다"라고 고한다. 좌의정 김상로는 "남자는 30세가 좋을 듯하나, 여자를 25세로 하는 것은 너무 늦어 23세로 함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자 영조는 "그러면 남자는 30세로, 여자는 23세로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명한다. 오늘날의 대통령이 초혼 연령 증가로 인한 저출산을 걱정하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 연구자들이 공동 집필한 이 책은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인 '승정원일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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