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발(發) 유럽 재정위기는 실물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가시화된 유럽 재정위기가 올 들어 최고조에 이르며 경기 위축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유럽의 실물경기는 상당히 탄탄한 모습이다. 유럽의 상당수 기업들이 최근 잇달아 상당히 높은 수익을 거두자 유럽 실물경기는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침체국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관측마저 나올 정도다. 유로존 경제는 지난해 3ㆍ4분기 6분기만에 플러스 성장(0.4%, 전분기 대비)으로 돌아선 이후 4분기(0.0%)에 다소 주춤했지만 올 1분기에 다시 0.2%의 성장률을 달성,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유로존 산업생산이 지난 1월 21개월만에 오름세(1.7%, 전년 동기 대비)로 전환한 뒤 ▦2월 4.1% ▦3월 7.7% 등으로 상승 폭이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과거 미국발 금융위기가 실물경기로 크게 위축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유럽 재정위기의 심화에 따른 더블딥(이중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산업분야는 대체로 건실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유로화 가치 하락에다 중국 등 이머징국가들의 수입 수요 증가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 데다 중국ㆍ 인도ㆍ브라질 등 이머징 국가들의 경기가 호조를 보인 덕분이라는 얘기다. ◇ 유로약세로 수출 경쟁력 높아져= 독일 자동차회사 다임러의 메르세데스-벤츠 모델의 경우 올 들어 4월까지 미국시장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22%나 늘었다. 더욱이 미국에서 차량판매를 통해 얻은 달러를 유로화(6월 11일 기준)로 환전할 경우 올 초에 비해 15%의 환차익도 거둘 수 있다. 현재 유로화는 올 초 대비 15%가량 절하된 상태다. 뉴욕타임스(NYT)는 다임러의 사례를 들며 유로화 하락이 유럽의 많은 기업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유로존 교역의 절반은 비(非)유로존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독일 등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그간 펀더멘털보다 과대평가된 유로화의 하락을 크게 반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요 투자은행들의 전망을 인용, "독일이 올 2분기 3~4%(연율환산)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며 "유로약세는 당분간 유로존을 재정위기의 혼란에서 어느 정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전했다. 유로화는 올 초 유로당 1.43달러에서 출발, 지난 7일 4년만의 최저치인 달러당 1.19선달러까지 떨어졌다가 11일 현재 1.21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NYT는 전문가들을 분석을 바탕으로 "유로화의 적정 가치는 구매력 기준으로 1.2달러"라고 전했다. 현재 환율수준이 유럽 기업에게 최적의 외부조건이라는 것이다. ◇ 신흥시장 공략에 박차 = 유로약세가 수출 경쟁력을 높여준 것은 무시할 수 없지만 실제 수요가 없다면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유럽 기업들은 중국 등 이머징국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경기 침체 국면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자 이들 이머징국가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세계최대 에너지관리 기업인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지난 1분기 아시아에서 23%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적자를 냈지만 아시아시장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흑자를 달성했다. 전자제품업체 필립스와 자동차회사 르노는 앞으로 5년 내에 주요 신흥국들에서 전체 매출의 절반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라프 보르트만 독일 기계생산협회 회장은 "기계시장의 경우 유로약세보다 글로벌 교역 확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유럽 기업들은 이머징국가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다.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 수송 및 저장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환율변동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럽 국가들이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세계 최고수준의 환경기준을 채택한 점도 기계, 자동차, 석유화학 등 이른바 '굴뚝산업'의 해외이전을 촉발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 지속 성장 여부는 신성장 산업에 달려 =유럽기업들은 유로화 가치 하락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유로약세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원유, 철광석 등 주요 원자재가 달러화로 표시되기 때문에 유로약세는 생산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채산성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가파른 환율변동은 경영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투자를 가로막는다. 상당수 유럽기업 경영자들은 지난해 유로화가 1.5달러대까지 치솟았던 점을 떠올리며 "유로화의 최근 가파른 하락세는 언젠가는 급격한 반등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중국 등 이머징국가들은 유럽의 주요 수출대상국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하다. FT는 "유럽이 지식경제로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는 만큼 산업 공동화(空洞化)가 불가피하다"며 "앞으로는 이머징국가들에 비해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지속적 성장을 위해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진출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독일 지멘스의 페터 뢰셔 최고경영자(CEO)는 "유럽 산업의 미래는 민관합작의 친환경 기술산업과 산업 서비스(제품관리 및 지원 등) 등의 분야에 달렸다고 본다"며 "신흥시장의 경쟁자들에 대항하려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