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발의 의사를 철회한 지 20여일. 이후 대통령의 발언들은 심하게 표현해 독설(毒舌)에 가깝다. 노 대통령이 대권 주자들에게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위험 수위를 넘는 수준이다. 지금 진행되는 대선 게임에서 대통령은 분명 필드의 심판이 아니라 선수 그 자체다. 그것도 후방의 수비수가 아닌 최전방 공격수다.
지난달 29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정치는 죽었다”고 선언한 노 대통령. 연이어 지난 2일에는 “대권을 거저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남의 재산을 빼앗아 깔고 앉아” 등의 자극적인 단어를 동원해 대권 주자들을 싸잡아 공격했다. 이명박ㆍ박근혜 두 주자는 물론 이미 대권을 포기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게까지 부관참시 격의 공세를 취했다. 고건 전 총리의 낙마를 사실상 유도했던 광경을 목도했던 대권 주자들에게 노 대통령이 벌이는 ‘굿판’은 여간 고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양상대로라면 노 대통령은 정치권 비판이라는 예열 수준이 아니라 새 깃발을 꽂는 단계로까지 전진해나갈 공산이 크다.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펼치는 정치 무대. 물론 노 대통령은 정치 최고지도자로서 정치판에 훈수를 둘 자격이 있다. 입버릇처럼 강조해온 원칙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끊임없이 용솟음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노 대통령이 벌이는 장단은 수위가 지나치다. 단순히 대권 주자들에게 일방적 비판의 칼날을 휘두르고 그들의 단점만을 들춰내는 정략적 의도를 꼬집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4년간 걸어온 정치적 발걸음을 되새겨볼 때 지금의 행보는 ‘담장 위를 걷는 대통령’ 자체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선거 개입으로 탄핵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지 않았던가.
필드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고 게임을 비판하면서 승패를 관전하고 평가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일부 해석처럼 대통령의 현 정치 행보가 친노 세력의 재결집을 바라고 하는 것들이라면 이미 필드의 심판 자격을 잃은 것이다. “입이 째진다”는 대통령 스스로의 표현처럼 30%라는 지지율에 지나치게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자신의 집권을 끝으로 민주 세력의 정권 재창출이 물 건너갈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