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신세계와 이마트 등기이사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한다. 경제민주화 바람과 함께 진행된 검찰 소환, 국회 고발, 이마트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45세의 젊은 오너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버거웠던 모양이다. 그룹 측은 이미 지난 2011년부터 논의돼온 사안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지만 별로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정 부회장의 이번 결정은 간단히 보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오너들은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으로 위기극복의 선두에 서왔다. 지난해 불황에도 대기업이 전년보다 2조원 넘게 투자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오너들의 의지가 강했기에 가능했다. 한때 위기에 몰렸던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근저에도 이건희 회장의 경영복귀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경제민주화의 강풍 속에 대기업 오너들이 책임경영의 끈을 계속 쥐고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국회에서는 이들의 급여를 공개하는 방안을 담은 새로운 자본시장법 부분개정안까지 들고 나왔다. 국민들의 관음증을 해소하기 위해 등기임원들을 발가벗기겠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오너들이 애착을 갖고 기업경영에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계열사 사장단협의체 의장직과 임원인사권을 내놓고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뗀 최태원 SK그룹 회장 같은 사례도 있다.
문제는 오너의 책임경영 포기가 과연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신세계그룹도 정 부회장이 등기이사에 등재되지 않지만 미래 성장동력은 계속 챙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경영은 오너가 계속하고 책임만 전문경영인이 지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특성상 오너가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무리 대표이사라도 말 한마디로 갈아치울 수 있는 막강한 힘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현실이 이렇다면 대기업 정책도 순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오너의 책임을 높이고 기업과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