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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수도인 경주가 하나의 도심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도심을 갖춘 거대도시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적이 발견됐다. 또 이번 발굴은 그간의 통설과 배치됐던 삼국유사의 수도규모 기록에 대해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은 현재 발굴조사 중인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ㆍ모량리 소재 경주-동해남부선 연결선 건설공사 구간 전장 1㎞를 발굴 조사한 결과 통일신라시대의 도로, 우물, 담장, 적심(積心ㆍ초석 아래 돌을 층층이 쌓아 기반을 다진 것)건물지, 제방시설 등을 갖춘 도시유적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연구원은 이에 관한 현장설명회를 오는 12일 오후2시 발굴조사 현장에서 개최한다.
연구원 관계자는 "이번 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경주시내 왕경지역 바깥인 방내리ㆍ모량리 일원에서 도로에 의해 방형으로 구획된 도시를 확인한 것"이라며 "그간 방제(계획도시의 한 구획)에 의한 도시 조성이 경주시내에서만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외곽지역에서 확인돼 신라 왕도의 발달사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발굴은 삼국유사 '진한조'에 기술된 내용(신라의 전성기에 경중(수도)에 17만8,936호, 1,360방, 55리와 35개의 금입택(고관대작 등의 화려한 저택)이 있었다)과 현재의 통설인 360방의 차이를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삼국유사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발굴조사에 따르면 도로는 그 폭이 5~8m로 총 10여 곳이 확인됐고, 모두 남북ㆍ동서 축으로 이뤄졌다. 이 도로에 의해 구획된 하나의 방(坊ㆍ구획)은 가로ㆍ세로가 모두 120m로 같고, 방 내에는 담장과 우물, 적심건물지로 구성된 가옥이 조성돼 있다. 또 하천(大川)과 인접한 북쪽 경계 지점에서는 길이 30mㆍ폭 5m의 석축제방(돌로 쌓은 제방)이 발견돼 도시의 경계를 확인할 수 있다.
유물로는 다수의 수막새(연꽃ㆍ사자문양), 암막새(비천문양)를 비롯해, 고배(高杯ㆍ일명 굽발이접시)ㆍ인화문(일정 형식이 반복되는 문양) 청동접시ㆍ수레굴대(바퀴가 빠지지 않게 고정시켜주는 부품), 탑상전(탑 처마끝에 장식하는 부재), 치미(용마루 장식기와), 청동거울 등이 출토됐다. 특히 이 유물들 중 우물주변 진단구(건물을 지을 때 땅의 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서 지하에 묻는 매장품)로 이용됐던 청동접시의 바닥에 '왕(王)'자가 새겨져 있다.
하진호 영남문화재연구원 소장은 "복원과정을 완료하면 확실해지겠지만, 왕(王)자 위에 용(龍)자가 적혀 있을 것"이라며 "우물을 지으며 가뭄 등을 막아달라고 수신(水神)에 제사를 지낸 증거"라고 말했다.
유적의 중심 시기는 도로에서 출토된 유물에 의해 8세기경으로 판단된다. 도로와 건물지의 중복이 많고, 건물 조성 시 이용된 축성토에서 5세기의 유물이 다수 출토된 점을 감안할 때, 5세기경부터 마을이 조성돼 8세기경 경주 수도와 같은 도심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발굴지역 일대는 신라 6부의 하나인 모량부(牟梁部)의 옛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신라왕경으로 진입하는 서북 방면의 주요 교통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