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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2월 10일] 北 화폐교환이 성공하려면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최근 북한의 행보는 지난 1992년 3월 임금인상 및 화폐교환, 2002년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취하던 당시를 연상하게 한다. 두 조치 모두 시장을 억제하고 공식경제 부문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시장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1992년, 2002년 모두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나진ㆍ선봉과 신의주를 각각 개방했다는 점이다. 이는 공식 부문을 살리기 위해서는 시장을 억제하는 한편 공적 유통망에 물자를 원활히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해법을 지역개방으로 모색하고자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개방-핵문제 분리해선 안돼
그런데 두 번 모두 핵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역개방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시장이 더욱 확산됐다.
이번에도 역시 북한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화폐의 액면가치를 100대1로 조정하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가구당 구권 10만원(신권 1,000원) 교환한도 설정 및 저금 유도, 그리고 일주일 내 교환 등 갑작스런 화폐교환 조치를 취했다. 화폐교환으로 시장을 억제하고 인력과 자원을 공식경제 부문으로 집중시키려는 시도다.
남은 숙제는 국가가 정한 월급으로 국정가격의 물품을 살 수 있도록 공적 유통망에 물자를 원활히 공급하는 것이다. 그것도 단기적으로 반짝하는 공급이 아니라 안정적ㆍ지속적인 공급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 부문이 정상화돼야 한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북한의 생산 부문은 자체 자원만으로는 도저히 회생할 수 없는 상태다. 반드시 외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인지 남포에 중국 자본을 유치한다든가 유럽 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를 개최한다는 일부 보도도 있었다.
북한 당국자들은 "미국과의 관계만 개선되면 언제든지 외자가 들어올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 간 대화를 원하는가 하면 미북 간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한반도 정세는 풀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보즈워스 미국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있다. 미북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미국에 핵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로 경제 문제의 해결을 원한다면 북한은 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해야 한다. 북한은 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
화폐교환도 한 마당에 개방과 핵 문제를 분리해 생각하는 과오을 범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1992년과 2002년의 실패를 교훈 삼아 핵 문제에서도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만이 북한이 경제를 정상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결단이 늦어질수록 북한 주민의 생활은 이중 삼중으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북한 당국이 배급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주민들에게서 하루아침에 시장을 빼앗아 놓고 대안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주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활하라는 것일까.
외자유치 못하면 실패 불보듯
갑작스런 화폐교환으로 시장을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또다시 시장은 확산되고 그 속도 역시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지고 북한의 화폐 자체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중국 등 비교적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들의 지원도 북한 스스로 경제를 회생시키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한계가 있다. 북한 경제가 지금같이 속수무책의 상태가 된 것은 결코 외부의 압박 때문이 아니다. 변화된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북한 스스로의 판단착오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북한 당국은 하루속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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