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폭염이 찾아오면 출근용 반바지를 하나 살까 생각 중이에요. 그런데 윗분들이 (반바지 차림을) 어떻게 바라보실지는 잘 모르겠네요." IT 기업 입사 5년차인 서모(32) 대리의 말이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이모(36) 과장은 서 대리의 고민이 부럽기만 하다. "여름이라고 해도 저희 부서에서는 긴팔 와이셔츠를 꼭 입어야 합니다. 둘둘 걷어 입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죠. '트레이더가 반팔? 그건 예의가 아니다'라는 팀장의 말을 듣고 나니 반팔은 딴 나라 얘기죠." 이 과장은 이렇게 털어놨다.
30대 직장인들은 반팔 셔츠는 물론이고 반바지 차림까지 쿨비즈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임원 승진을 앞둔 40~50대 직장인들이나 대외활동이 많은 기업체 고위 임원들은 쿨비즈를 권장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입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더위를 물리치는 쿨비즈이건만 직장인들은 새로운 고민을 안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예의를 따지는 상사의 눈치를 보고, 또 누군가는 편안함과 예절 사이의 적당한 선을 고민한다.
그러나 패션 전문가들은 쿨비즈를 좇는다고 해서 시원함과 예절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LG패션 신사캐주얼부문 이지은 CD(Creative Director)는 "여름 남성복 코디의 관건은 얼마나 인체의 시원함을 유지하면서도 스타일을 살릴 수 있는지이다"라며 "국내외 패션 브랜드들 사이에서는 비즈니스 캐주얼의 필수 아이템인 재킷을 중심으로 입은 듯 안 입은 듯한 느낌을 주는 특수 냉감 소재 개발 경쟁이 한창"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반영하듯 패션계에서는 밝은 색상을 채용한 재킷이나 시원한 착용감을 주는 리넨 소재를 활용한 여름 제품이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최근에는 통기성이 리넨보다 뛰어난 시어서커 소재나 천연섬유 소재인 뱀부(대나무)를 원단으로 쓰기도 한다.
세정의 남성복 브랜드 인디안은 여름에도 긴팔 정장을 버릴 수 없는 이 과장 같은 회사원을 위해 모헤어 혼방이나 냉감폴리 등 냉감 기능성 소재를 활용한 '아이싱 수트'를 출시했다. '아이싱 수트'는 올여름을 맞아 슬림핏에 한층 밝아진 회색과 남색 컬러톤을 내세웠다. 또 비즈니스 캐주얼을 허용하는 직장이 늘어나면서 리넨 소재로 된 재킷도 예년보다 다양하게 출시됐다.
이은영 인디안 상품기획부장은 "이른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예년보다 빠른 4월부터 냉감 기능성 소재 정장을 확대했으며 편안한 비즈니스 캐주얼을 연출할 수 있는 리넨(리넨혼방) 소재 군의 상품구성도 늘렸다"고 전했다.
LG패션의 남성복 브랜드 마에스트로도 이탈리아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최고급 아마(린넨)와 견(실크) 혼방 소재를 사용한 여름철 투버튼 재킷을 내놨다. 통기성이 좋아 한여름에도 활용 가능하며 시원한 라이트 블루 색상으로 보는 이들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재킷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하얀색 긴 바지를 입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무늬가 없는 흰 바지는 다리가 굵어 보일 수 있지만 스트라이프 등의 패턴이 들어간 흰 바지라면 오히려 다리가 길고 날씬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또한 꽃무늬 등 화려한 패턴이 들어간 셔츠나 네이비나 민트 등 청량한 컬러가 들어간 셔츠와 함께 코디하는 것도 센스 넘치는 여름차림이다.
폴로셔츠의 변신도 눈에 띈다. 유니클로는 옷깃 부분을 셔츠처럼 견고하게 디자인한 '드라이셔츠 칼라폴로셔츠'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그대로 입을 수도 있지만 넥타이와 재킷을 착용해도 어색하지 않아 외근이 잦은 직장인에게 활용도가 높다.
더위에 유독 약하다면 반바지도 대안 중 하나다. 제일모직의 빨질레리는 베이지나 화이트, 네이비 등 기본 색상의 슬림한 반바지와 함께 입기 좋은 리넨 소재의 재킷을 내놨다.
빨질레리의 이은미 CD는 "패션에 관심이 없는 남성이라도 반바지를 입을 때 '3무(無) 법칙'만 따르면 세련된 쿨비즈 룩을 연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법칙은 전형적인 동네 아저씨 패션을 피하기 위해 ▦양말을 신지 않고(양말 無) ▦ 정장 구두대신 로퍼나 보트슈즈 등 적절한 신발을 신으며(구두 無) ▦ 빳빳하게 다려진 드레스셔츠 대신 면이나 리넨 소재의 셔츠(드레스셔츠 無)를 택하라는 것이다.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름 옷차림 고민이 덜한 여성들도 격식과 시원함 모두를 잡을 수 있는 쿨비즈를 선택하면 한층 시원한 여름날을 보낼 수 있다.
TNGTW는 가벼우면서도 통풍이 잘되는 폴리에스터 소재를 사용한 아이보리색 원피스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재킷을 위에 걸쳐도 부담이 없고 밝은 아이보리색을 써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또 스커트 부분에는 주름이 가늘게 접혀 있어 통풍성을 높였다.
패션그룹형지의 크로커다일레이디는 땀을 바로 배출해 쾌적함을 유지시켜주며 소매 부분과 몸판이 한장으로 연결돼 활동성이 뛰어난 '휘들옷' 셔츠를 내놨다.
올리비아로렌은 리넨과 면, 폴리 소재가 혼방된 H라인의 원피스를 출시했다. 전체적으로 밝은 녹색이지만 목 부분과 밑단이 남색으로 배색처리돼 있어 산뜻한 느낌을 준다. 얇은 재킷이나 카디건과 함께 입기 좋다. 올리비아로렌 관계자는 "습한 여름철에는 원피스가 쿨비즈 아이템으로 인기"라며 "바지를 입을 경우에는 블루와 화이트 색상을 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식상해 보일 수 있는 만큼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거나 채도가 높은 색상의 재킷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