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九州)대 의대에 잔악한 생체실험을 했던 의대 선배들의 만행을 반성하는 전시물이 설치됐다.
후쿠오카(福岡)시 소재 규슈대 의학부가 동창회 기부금으로 건설, 4일 개관한 의학 역사관에 태평양 전쟁 말기에 있었던 ‘규슈대 생체해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2점의 전시물(패널 등)이 비치됐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의료기록과 의료기구 등 역사관 내 총 63점의 전시물을 통해 규슈대 의대 110여년의 성취를 보여주되, 과거사의 치명적인 과오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이다.
패널에는 “우리는 비인도적인 생체해부사건으로 희생된 외국인 병사에 대해 다시 한번 마음으로부터 애도의 뜻을 표하는 동시에, 1948년의 (학내) ‘반성과 결의의 모임’에서 선배들이 결의했던 의사로서의 모럴(도덕)과 의학자로서의 연구 윤리를 재확인하고, 앞으로 이 결의를 계승할 것을 단호히 맹세한다”는 규슈대 의학부 교수회의 결의가 담겼다.
의학 역사관 개관식에서 스미모토 히데키(住本英樹) 규슈대 의학부장은 “의학, 의료의 역사에서 의학부가 해 온 역할과 공적, 반성해야 할 과거를 되돌아보고, 다음에 나아갈 길을 사색하는 장소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1923∼1996)의 소설 ‘바다와 독약’의 소재가 된 규슈대 생체해부 사건은 일본의 패전이 유력시되던 1945년 규슈대 의학부 교수들이 격추된 미군 폭격기 승무원 중 8명을 실습실에서 해부한 일을 말한다.
교수들은 희석한 바닷물을 혈관에 주입하거나 폐를 절제하는 등의 만행으로 포로들을 숨지게 했다.
종전 후 연합군의 군사법정에서 이 사건에 대학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사건에 관여한 의사들은 법의 심판대 앞에 서야 했다.
B·C급 전범을 단죄한 요코하마(橫浜)의 군사법정에서 5명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등 사건 관계자 23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을 계기로 한 미국의 대 일본 유화정책 속에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고, 훗날 사면 절차를 거쳐 관련자들은 대부분 석방됐다. 사건의 기획자 중 한 명은 옥중에서 자살했다.
이후 최근까지 규슈대는 이 사건을 거론하는 것을 금기시하며 공개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 의학부 교수회의에서 의학 역사관 개관을 계기로 부정적인 역사도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옴에 따라 전시를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교도는 전했다. 의학 역사관은 8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