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통상전문가, 국제기구 수장 자격 충분해"

한인 첫 WTO 사무차장 지낸 김철수 전 상공부 장관
"개도국서 세계 8위 무역국으로 통상 통해 발돋움한 경험 살려
지금이 국제기구 맡을 적기"
통상정책 올바른 방향 모색
'통상을 넘어…' 한 영문판 출간


"우리나라는 통상을 통해 개발도상국에서 주요 무역국가로 발돋움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값진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국제 통상기구를 한국인이 맡을 자격도 있고 시기도 됐다고 봅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국제무역기구(WTO) 사무차장을 지낸 김철수(73·사진) 전 상공부 장관이 한국의 통상전문가가 국제기구의 수장으로 나설 이유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특허법률회사 리인터내셔널 상임고문인 그가 상공부 실무과장에서 WTO 고위직까지 40여년간 통상 분야에 몸담으면서 썼던 글들을 엮은 저서 '통상을 넘어 번영으로: 경제발전과 한국의 통상'과 영문집 'Trade Winds of Change: Korea in World Trade'를 4일 출간한다.

김 전 장관은 "우리나라는 통상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숙명적 관계"라며 "그간 통상의 발자취를 돌이켜보고 향후 통상정책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고 싶었다"고 출간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통상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것과 지난 1980년대 이후 한국의 통상 협상과정이 모두 도전이었다고 회고했다. 1989년 미국과의 '슈퍼 301조' 협상이 대표적이다. 당시 상공부 차관보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그는 거센 시장개방 요구에 직면했다.

그는 "협상장에서 '한국은 제2의 일본이 아니며 중상주의 국가라는 지적도 틀리다'라는 논리로 미국 측을 설득했다"며 "결국 일본과의 차별화한 전략이 효과를 발휘해 한국이 불공정무역국가로 지정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정치학을 전공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고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1973년 해외 박사들을 대상으로 한 상공부 과장급 특채에 주저 없이 응한 것이 통상전문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다. 귀국 후 어려웠던 3년간 군대생활이 낯선 공무원 사회에 적응하는 데 용기를 줬다. 그는 "당시 한국이 수출 10억달러를 달성하고 통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시기"라며 "상공부에 입문하자마자 미국 담당 과장을 맡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면서 배웠다"고 회고했다.

한국인 최초의 WTO 사무총장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비록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지 못했지만 WTO 사무차장직을 맡아 이후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한국인 국제기구 수장 탄생의 물꼬를 터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전 장관은 "1990년대 한국의 무역 위상이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사무총장 도전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 "그래도 아시아·아프리카 등의 지지를 받아 최종 투표까지 올라간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1995년 그의 WTO 사무차장 취임은 국제기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박태호 경제통상대사(옛 통상교섭본부장)가 WTO 사무총장 예선에서 아쉽게 탈락한 점을 상기한 그는 "국제기구 수장을 배출하는 일은 국격과 인식이 매우 중요한데 세계 8위 무역국으로 부상한 한국이 예전과 다르다는 점은 확실하다"며 "개도국과 선진국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온 만큼 우리나라에서 수장이 나올 때도 됐다"고 말했다.

WTO 사무차장 시절 그는 중국의 WTO 가입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2001년 중국 가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은 "1995년 WTO 출범 이후 국제 무역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다자간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받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170여개국에 이르는 회원국의 일괄적인 타결을 이뤄내기는 너무 어려운 만큼 사안별 타결과 의사결정 개선 등 협상 방식에 큰 변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등 지역 간 협상과 WTO 주도의 다자간 협상 가운데 어느 한쪽의 선택보다는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며 "우리도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중국·일본 등과의 FTA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 통상연구소 역할인 무역투자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앞으로 통상 컨설팅 사업과 인재육성에 주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통상전문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통상은 세계 공통어를 구사하는 것과 같다"며 "외국어 실력과 함께 자기의 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국제적 감각을 꾸준히 키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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