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정신·삼색의 이색 무협영화

장이모우 '영웅'중국의 대표적인 거장 장이모우(張藝謀) 감독의 첫 무협영화 '영웅'이 지난 12일 밤10시(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중심가의 신동안극장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베일을 벗었다. 기획ㆍ제작기간 3년, 제작비 400억원의 대작인 이 작품은 철통 같은 보안 유지로 출연배우와 주요스태프의 면면 이외에는 영화에 관련된 어떤 것도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일본ㆍ싱가포르ㆍ태국ㆍ필리핀 등 아시아지역 200여명의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보인 '영웅'의 첫 선에 대한 반응은 일단 냉담했다. 이 날 영화상영이 끝나자마자 객석은 자리를 뜨기 바빴고, 박수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진시황과 그를 살해하려는 자객들의 음모를 다룬 이 영화는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산만하게 펼쳐지면서 헛도는 느낌을 주었고, 양차오웨이(梁朝偉), 장만위(張曼玉), 쳰쯔단(甄子丹), 리옌지(李連傑), 장쯔이(章子怡) 등 걸출한 스타들은 어느 누구도 이름에 걸맞는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배우들은 이튿날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배역이 평면적이긴 하지만 불만은 없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영화 '영웅'은 감독인 장이모우만 '영웅'으로 남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았다. 진시황의 무력을 통한 천하통일을 평화를 위한 역사적 업적으로 해석하는 부분도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보편타당성을 갖기에는 힘에 부친 듯했다. 장 감독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호흡하고 대화를 나누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지만, 한편의 무력통일이 한편에게는 억압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강자의 논리'로 해석될 여지는 여전히 남는다. 그래도 장이모의 첫 무협영화인 '영웅'은 거장의 작품다운 무게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우선 빠른 액션 일변도의 무협영화에 '정신'을 불어넣었다. 장 감독은 '주제의식을 담은 무협영화'라는 전인미답의 세계에 도전했다. 영화는 '진시황의 천하통일=평화'라는 메시지가 전편을 통해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이에 대해 장 감독은 "이 영화는 '폭력'을 소재로 삼았지만, 뜻은 '평화'를 담고 있다"라고 말했다. 무명 역을 맡은 배우 리옌지도 "장 감독의 '영웅'은 액션과 정신이 함께 숨쉬는 무협영화로는 전례 없는 거장의 걸작이며, 평소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영화였다"라고 설명했다. 시각미가 돋보인다는 점도 '영웅'의 미덕이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회상과 상상을 따라 레드ㆍ블루ㆍ화이트 세 부분으로 전개되면서 '색채영화'라는 무협영화의 새 경지를 선보인다. '화양연화'에서 이미 대가의 솜씨를 과시했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이 '영웅'을 환상적인 색채의 미학으로 끌어올린다. 이밖에 무술감독 청샤오동(程小東), '라쇼몽 '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의상디자이너 와다 에미, '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탄둔 등 화려한 스태프들이 '영웅'을 정말 볼 만한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는 진시황을 죽이려던 자객 셋을 죽였다는 검객 무명(리옌지)과 진시황이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명이 자신이 어떻게 자객을 처치했는지 설명하고, 이에 대해 진시황이 반론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4가지 독립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알고보니 무명은 자신이 죽였다는 세 명의 자객들과 진시황의 살해를 꾸민 공모자.. '화양연화'에서 인상적인 러브스토리를 선보였던 양차오웨이와 장만위는 각각 잔검(殘劍)과 비설(飛雪) 역을 맡아 다시 한번 인상적인 사랑연기를 펼친다.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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