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이요? 선수들이 뽑는 거잖아요. 선배님들한테 인사 잘하고 있습니다."
재미동포 존 허(22ㆍ한국명 허찬수)는 전화 인터뷰 내내 밝은 목소리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신인왕에 대한 기대를 슬쩍 내비쳤다. 그는 '꿈의 극장' PGA 투어에서 올 시즌 유력한 신인왕 후보다. 신인 중 유일하게 우승(1승)이 있고 30명만 나갈 수 있는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까지 생존했다. 지난 2월 마야코바 클래식에서 우승한 그는 지난달 24일(이하 한국시간) 끝난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서 29위에 올랐다. 아시아(계) 선수 중 최고 순위이며 신인왕에 오를 경우 아시아(계) 최초라는 영예를 안게 된다. "시즌 전만 해도 투어에 잔류하는 것이 목표였다"는 존 허는 PGA 투어의 대표 블루칩으로 떠오른 데 대해 "아직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뉴욕 출생인 존 허는 두 살 때부터 10년간 한국에 머물다 2002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투어에서 뛴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넉넉잖은 형편 탓에 국내 투어 시절에는 골프백을 메고 지하철로 연습장을 오갔다. 당시를 떠올리면 올 시즌 벌어들인 260만달러(약 29억원)의 상금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듯했다. 하지만 존 허는 "액수가 워낙 크지만 그렇게 벌 만큼의 성적을 냈다는 것이 더 기분 좋다"며 "어려웠던 시절에도 그때 상황에서는 그렇게라도 운동을 해야 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살던 존 허 가족은 올 6월 댈러스로 이사와 방 5개가 딸린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올 시즌 최고로 짜릿했던 순간은 역시 첫 우승 때일까. 존 허는 "어렵게 2등을 했던 발레로 텍사스오픈(4월) 때가 더 특별했다"고 밝혔다.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출전을 포기하려다 나간 대회였어요. 1라운드 성적(공동 119위)이 엉망이라 기권하려고도 했는데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더 컸고 잘 마무리하게 됐죠." 당시 1라운드 초반 8개 홀에서 9타를 잃었던 존 허는 다음날부터 3일 연속으로 60대 타수를 적어내는 무서운 집중력을 과시하며 기어이 공동 2위로 대회를 마쳤다. 어릴 적 우상이었던 타이거 우즈(미국)와 어니 엘스(남아프리카공화국)에게서도 칭찬을 받았다.
올 시즌 존 허에게 우승과 2위를 포함해 네 차례 톱10 진입을 안긴 것은 68.58%의 높은 페어웨이 안착률이다. 존 허의 드라이버샷 거리는 평균 287.4야드로 110위지만 70%에 육박하는 정확도에서는 9위를 자랑한다. 그는 "한국에서 뛰었던 것이 도움이 됐다. 산악 지형에 페어웨이가 좁고 아웃오브바운즈(OB)가 많아 티샷 연습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존 허는 4~7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슈라이너스 아동병원오픈에 나선 뒤 신한동해오픈 출전차 한국을 찾는다. 메인 스폰서 제의도 줄을 잇는 상황. 먼 미래의 계획을 물었더니 그저 웃는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 안 해봤어요. 이제 스물두 살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