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8월 17일] 저출산 쇼크에 대비하자

임주재(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지금 들으면 웃음이 절로 나오지만 학창 시절에는 유행가 가사만큼이나 귀에 익었던 표어다. 한참 뒤에 나온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따위의 슬로건들도 여전히 귀에 생생하다. 그 시절에는 거의 매일같이 라디오나 TV에서 듣던 말들이니 그럴 법도 하다. 집집마다 애를 안 낳아 걱정인 요즘 상황과 비교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산아제한이 국가적 과제였던 옛 시절을 재미있는 추억거리로 회상하기에는 오늘의 한국 상황은 너무 심각해졌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한집에 자녀 네댓명은 예사였던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성이 평생 동안 낳는 아이 수)은 지난해 1.19명으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서울경제신문이 연재하고 있는 ‘인구대재앙’ 기획시리즈를 보면 조만간 사상 최악의 ‘0점대’ 출산율 쇼크도 현실화할 전망이라고 한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의 여파로 최근 결혼 건수가 급감하고 있는데다 인구 구조 특성상 25~35세의 주력 출산층 여성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생산인구와 노동력의 감소를 의미한다. 여기에 세계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고령화까지 겹쳐 우리 경제는 심각한 정체와 퇴보의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인구지진(agequake)’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국가 차원의 위기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저출산은 경제ㆍ고용ㆍ복지ㆍ교육ㆍ문화ㆍ가치관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라 쾌도난마식의 해법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요즘 젊은 부부들이 왜 아이 낳기를 꺼리는지 그 이유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대안을 마련해가는 접근법은 필요해보인다. 예컨대 정책적인 금융지원을 확대해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가정보육시설을 대폭 확충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아이 낳을 엄두를 못 내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일하는 동안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곳이 부족하다는 것. 구립어린이집 같은 공공 보육시설을 한번 이용하려면 몇 년씩은 기다려야 한다. 금융지원을 통해 저비용ㆍ고품질의 사설 가정보육시설이 전국 곳곳에 많이 생겨난다면 출산장려에 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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