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일랑 이종상 한그림 40년전

『겸재 정선에게서 배울수 있는 진경산수의 경지는 바로 민족미술의 원형질입니다. 평생 한국미술의 자생성을 검증하고 확인해온 데는 겸재 정선과 같은 화가들의 진면목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지요』일랑 이종상 화백(서울대 미대교수)의 화업 40년을 조명하는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에서 4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 「일랑 이종상 한그림 40년」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전시에는 수묵산수화·문인화 등 80년대 이전 대표작 20여점, 장지벽화·닥종이그림등 90년대 종이그림 20여점, 동유화·동유설치벽화 10여점, 신벽화 3점, 뒷비침 장지벽화 설치작품 1점등 60여점이 선보인다. 여기에서 「한그림」이란 수묵채색화를 중국화, 일본화, 한국화, 동양화로 부르는 일반관행을 거부하고 한민족의 그림이라는 뜻으로 일랑이 직접 창안한 이름이다. 일랑은 『77년 국내에서 가진 첫개인전에「진경전」이라는 말을 썼을 때 주위에서 시대착오라는 염려를 했었다』고 회고하면서 『이번 전시회에 쓴「한그림」에도 염려의 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조형적 실험을 거듭했던 그는 동판에 유약을 발라 불에 구워 작품을 완성하는 「동유화」를 여러 장 연결하여 거대한 화면을 구성하는 동유벽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일랑은 이와함께 상감·부식·혼성벽화등 독창적인 벽화기법들을 개발하기도 했다. 대형벽화를 많이 창작했던 그는 『암각화나 고구려벽화 등에서 이미 민족미술의 자생성이 충분히 입증된바 있다』면서 『학교에서 공부할 때 서구식 습식벽화만을 가르치는 것에 황당했던 경험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벽화연구에 남달랐던 그는 이번에 뒷비침 대형 장지벽화 1점을 선보여 특별히 눈길을 모은다. 이 작품은 두껍고 질좋은 장지를 여러 장 이어 붙여 수십M에 이르는 대형 벽화를 수묵으로 그리고 뒤에서 조명이 비춰지게 한 것. 반투명의 상태로 빛을 통과시키는 한지의 특징을 이용한 것이다. 97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지하공간인 카루젤 샤를르5세홀 성벽 뒤에 70m에 이르는 뒷비침 장지벽화 설치 작품을 전시해 세계의 시선을 모았는데, 이번 전시회엔 작품중 일부인 22m를 선보인다. 3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구미술의 사조와 양식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시기에 그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맞선 선구자적 미술가. 60년대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하다가 『우리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신념에서 동양화로 바꿨다고 한다. 서구적 데생력을 전통적 동양화 양식에 결합시키는 한편 전통산수화가 추구하던 관념의 세계를 부수고 현실세계로 나와 사실주의적 작업을 했다. 한편 전시기간중 부대행사로 오는12일 오후3시 서정걸이「한국 현대미술과 일랑 이종상」, 17일 오후3시 정형민이「자생성 탐구」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한다. 또 14일 오후5시엔 지난해 일랑의 회갑을 기념해 기획된 「한국 현대미술의 자생성」(한길사 펴냄)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이용웅 기자 YY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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