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의 돛을 달고] (1)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崔圭東 (주)서울PR 대표>(주)서울PR 최규동(33)사장은 「창업 중소기업」이란 틈새를파고들어 400여곳의 PR대행과 컨설팅을 한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92년 남의 돈 5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세상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일에 매달렸고, 창업 6년만에 연 매출 100억원대의 100대 종합 광고대행사 경영자로 우뚝 일어섰다. 그가 PR대행을 한 기업중에는 독특한 마케팅전략으로 6개월만에 50억원을 번 곳도 있고, 과욕을 부리다 망한 기업도 있다. 그는 수많은 창업 중소기업의 성공과 좌절을 함께 했다. 그 자신과 남의 「돈버는 이야기」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추운 겨울 길가에 지핀 모닥불」처럼 위안이 될 것이다. 스물 여섯을 꼬박 채워가는 92년 가을. 군에서 제대한 지도 석달이 넘고 있었고, 뭔가 앞길을 개척해야 하는 시기였다.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애당초 회사에 취직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서양화 전공에 학생회장을 지낸 전력으로 어느 회사에 가서 조직원(?) 노릇을 하기도 어려웠고, 군대에서 최전방에 배치되었다가 의가사 제대를 한 몸.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취업전선에서 큰 장애물일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내린 결론이 사업.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대학 4년 동안 그림을 그렸으니 이와 관련된 일에서 아이디어를 찾았다. 그래서 찾은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전시회 전문대행사」. 당시 선배나 학교 은사님들의 전시회장을 돌아보면서 화가를 고객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시회가 다가 오면 화가는 그림 그릴 시간도 빠듯한데, 전시장을 섭외하고 카탈로그를 제작하며 접대용 음식까지 손수 장만해야 한다. 『화가는 그림만 그릴 수 있게, 나머지는 모두 전시회 전문대행사에서 대행한다』. 이것이 내 첫 사업의 주제였다. 문제는 자금. 모은 돈도 없고, 부모의 도움을 받을 처지도 아니라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누님에게 매달리자 누님은 친구에게서 500만원을 빌려다 주었다. 그 돈은 누님 친구가 3개월 후에 쓸「결혼자금」이었다. 서울 낙원상가 뒤편에 3평짜리 월세 사무실을 빌렸다. 임대 보증금을 내고 중고 책상을 2개 장만하니 180만원이 남았다. 이 돈을 운영자금으로 쓰려면 더 이상의 지출은 불가능했다. 집에서 쓰던 전화기를 떼어 오고, 잠시 직장을 쉬고 있던 누님에게 무보수로 경리를 부탁했다. 또 후배가 개업 선물로 들고 온 밥통으로 점심 값을 줄였다. 회사 이름은 「토탈 컴」. 이제 고객을 끌어 올 홍보용 카탈로그를 제작해야 하는데 역시 자금이 문제였다. 머리를 굴리다 보니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다. 『액자 제작, 그림 운반, 출장 요리, 인쇄 전문회사 가운데 업체별로 가장 유명한 곳을 찾아가 카탈로그 제작비를 갹출해보자.』 어차피 이들 회사도 협력업체가 필요한 마당에 카탈로그도 공동 제작하는 형식을 취하면 「누이좋고 매부좋을 일」. 내 사업계획을 듣고 전시회 관련 물량을 분야별로 독점 제공하겠다는 제안에 카탈로그비를 흔쾌히 내 주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조롭게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일에는 내가 모르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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