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혁신 대토론회] 기획단계부터 로드맵 수립… R&D 시스템 전면 수술해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13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 호텔에서 ''R&D 혁신 대토론회'' 를 개최했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등 학계, 산업계, 정부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진제공=미래부


국가 R&D(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대학과 정부 출연연구소의 역량을 강화해 전 주기적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투자 규모만 늘릴 것이 아니라 R&D의 질적 수준을 높여 고부가 가치 원천기술을 만들어내고 사업화까지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것.13일 서울 교육문화회관(The-K호텔)에서 개최된 'R&D 혁신 대토론회'에 모인 산업계·학계·연구계 관계자들은 만성적인 기술무역 적자 폭 확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국가 R&D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현재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R&D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각종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R&D 투자 규모는 세계 6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를 자랑하지만 출연연의 기술료 수입은 R&D 투자 대비 3.3%로 대만(7.0%), 독일(8.9%) 등에 비해 한참 낮은 상태다. 게다가 세계 상위 10대 특허 가운데 우리가 개발한 특허가 전혀 없고, 특허의 70%도 사실상 사장돼 있다.

◇로드맵 수립하고, 산업계 인력 평가위원 참여 =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략적인 로드맵 수립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시장·기술 동향정보 등 객관적 지표를 바탕으로 각 분야별 기술개발 전략을 수립해 예산도 이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는 것.

현재는 부처·기관에서 요청할 때마다 주먹구구식으로 예산이 배분되는 형국이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R&D 기획 예산 비중은 0.8%에 그쳐 5% 내외의 선진국·민간 기업에 비해 한참 뒤처진 것으로 분석됐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총괄적인 전략 없이 R&D 예산이 배분되다 보니 연구자 입장에서는 과제의 목적과 방향성이 불분명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산업계 우수 인력을 평가위원으로 참여시키는 등 과제 선전 체계부터 고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현재는 과제 선정 평가가 대부분 1시간 안에 완료될 정도로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 평가자들에게 전문적 능력이 결여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 일쑤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R&D 과제 선정에만 최소 몇 주의 시간을 쏟는다. A 출연연 관계자는 "민간에 비해 정부 R&D 평가는 전문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쓸데없이 많기만 한 연구보고서 분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대형 과제 보고서도 10~15페이지면 끝나는 민간 기업과 달리 정부 R&D는 통상 100페이지가 넘는 논문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되기 때문이다. 연구하는 시간보다 보고서 쓰는 시간이 더 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 연구개발의 문제점은 초기 단계부터 치밀한 사전 계획 없이 진행되는 것"이라며 "선진국의 경우 연구과제 선정부터 특허 조사 등 다양한 사전 분석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평가 체계 개선 및 사업화 보상 강화 = 논문 게재 수, 특허 건수 등 양적 평가에 치중돼 있는 연구 평가 체계도 뜯어고쳐야 할 사항으로 강조됐다. 현재 연구자·대학 교수 업적 평가 시 논문 비중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20%, 한국전자통신연구원 4~20%, 한국전기연구원 50%, 각 대학 30~40% 수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연구자의 실제 능력 보다 논문에 따라 평가 하는 관행이 일반화 돼 있다.

아울러 R&D의 최종 목적이라고 볼 수 있는 사업화와 관련해서는 연구자의 열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보상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학은 논문 게재, 출연연은 과제 수주를 연구 실적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 사업화에 성공한 연구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를 강화해 연구자가 연구사업 개발화(R&BD) 마인드를 갖게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더해 대학과 출연연의 기술이전 전담조직에 힘을 더 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 대부분의 출연연 기술이전 조직은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행정 업무에 치이는 일이 많은 실정이기 때문이다. B 출연연 한 관계자는 "연구자가 스스로 개발한 기술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니 의욕도 떨어지고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고 술회했다.

대학·출연연의 기술 정보에 대한 중소기업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필요한 기술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어 연구자와 기업을 연계하는 시스템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대학·출연연 R&D 시스템 개조를 통해 'R&D 투자->고부가가치 원천기술 창출->사업화->창업 촉진->R&D 재투자'라는 국가 R&D 선순환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D 규모를 늘리기에 앞서 이에 걸맞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체계부터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산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공급자 중심의 선진기술 모방형 R&D로 지금까지의 경제 성과를 이뤘다면 앞으로는 수요자 중심의 고부가가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며 "R&D로 개발한 기술은 반드시 사업화까지 연계돼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한편 정부는 현재 '국가 R&D 혁신방안'을 준비중에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내용들을 토대로 정책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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