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특허괴물 기술한국이 흔들린다] <2>특허소송에 노출된 한국 글로벌 기업

올들어 51건 피소… 소송비용만 기업당 年수천억 달해
件당 최소 50억 소요 몇년새 2배이상 껑충
원천기술 상대적 취약 로열티 지급도 눈덩이


"어릴 적 거머리에 물려본 적 있으세요. 특허괴물은 원천기술이 취약하다는 우리 약점을 깊숙이 파고드는 거머리 같아요. 합의나 소송밖에 길이 없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요." 특허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A사 임원이 불쑥 이렇게 말했다. "합의조건으로 예전에는 100만달러 정도를 불렀는데 지금은 100만달러는 장난"이라며 "수천만달러는 기본이고 수억달러까지 요구해 황당할 지경입니다." 세계 최대의 특허괴물인 인텔렉추얼벤처스(IV)가 특허소송에 본격 나선 가운데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밀려오는 특허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몇 년 뒤에나 나올 소송 결과에 따른 손실도 문제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소송 1건당 들어가는 비용은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20억~30억원(미국 기준)이었지만 요즘은 최소 50억원으로 두배 이상 뛰었다. 연결감사 보고서 등을 토대로 분석해보면 지난 한해 동안 삼성전자ㆍLG전자 등만 하더라도 특허분쟁에 쏟아부은 비용이 3,000억~4,000억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올 1~8월에만 51건 소송 당해=특허괴물 등 해외에서 한국의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외국에서 국내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소송 건수는 51건에 달한다. 한달에 6.3건꼴인 셈이다. 연도별로는 2006년 국내 기업이 특허소송을 당한 경우는 12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7년 29건, 2008년 34건으로 증가하더니 올 들어서는 8월 현재 통계 작성 이후 최고 기록을 넘어섰다. 특허소송이 통상 2~4년간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2006년 이후 제기된 총 120여건의 특허소송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반특허괴물 단체인 '페이턴트프리덤(Patent Freedom)'은 이 같은 국제 특허소송의 절반 이상이 특허괴물에 따른 소송으로 분석했다. 지식재산보호협회의 한 관계자는 "소송이 제기돼 공개된 건수가 이 정도"라며 "특허분쟁의 경우 기업들이 비밀에 부쳐 공개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과 소송 전 단계에 있는 분쟁까지 합치면 국내 기업들의 피해는 상상 이상"이라고 말했다.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IV의 미국 임원들이 한국을 부쩍 많이 방문하고 있다"며 "당장 타깃에 들어가지 않는 기업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용 눈덩이 수천억원도 모자랄 판=특허분쟁 강도가 세지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관련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소송을 막기 위해 수천억원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특허소송으로 이어질 경우에는 변호사 선임비용 등 이래저래 적잖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특허소송 비용만 해도 2004년에는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할 때 판결까지 20억~30억원이면 됐다. 하지만 요즘은 비용이 증가해 50억원은 기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이래저래 많이 걸리면서 (특히 우리 기업의 경우) 몇 년 새 소송 비용이 2~3배로 껑충 뛰었다"고 말했다. 우리 주요 기업들이 특허괴물 등 특허분쟁 및 소송에 얼마나 비용을 지불하는지는 정확한 통계가 없는 상태. 하지만 연결감사 보고서를 토대로 추정해보면 최근 들어 특허대응비용이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기술사용계약 등에 대비해 쌓아놓는 기술사용료 충당부채가 2007년에는 3,403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8년에는 6,911억원으로 급증했다. 특허소송 및 분쟁 예방에 많은 돈을 사용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알 수 있다. LG전자는 특허소송 등에 대비한 비용을 기타 영업외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 회사의 기타 영업외비용은 2007년 1,094억원에서 지난해 5,881억원으로 늘어났다. 통상 소송에 들어가는 제반비용의 경우 판매관리비 항목 중 기타 비용으로 처리된다. 판매관리비의 기타 항목 비용이 LG전자는 지난 한해 2,000억원, 삼성전자는 7,000억원 증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특허대응비용 등이 대외비이지만 감사보고서 등을 통해 살펴보면 지난해 주요 기업은 수천억원씩 지출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올해는 이 비용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천기술 한계 로열티도 급증=특허분쟁에서 한국 기업이 타킷이 되는 이유는 우리 기업들이 생산ㆍ응용기술에 치중, 큰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원천기술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한계 때문이다. 이 같은 원천기술 부족은 해외에 지급하는 특허료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특허청이 작성한 특허권 등 사용료 국제수지 현황을 보면 국내 기업의 로열티 유출규모가 늘고 있다. 로열티 유출규모는 2005년 45억달러에서 2006년 46억달러, 2007년에는 51억달러, 지난해에는 55억달러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반대로 우리가 받은 특허료 수입은 등락을 반복하면서 특허료 국제수지의 경우 2005년부터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허권 등 사용료 국제수지 현황은 일반적인 기술무역수지와 다른 것으로 특허권에 초점을 맞춰 작성된 데이터다. 특허괴물 입장에서는 원천기술이 취약한 한국 기업이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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