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4ㆍ26총선을 통해 13대 국회에 첫 등원한 이래 나는 두 가지 목표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쳐왔다.하나는 이 시대 경제적 약자인 농어민을 대변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의회 선교의 작은 심부름꾼으로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 땅에 정착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것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나라 농정의 집행권자인 참여정부의 초대 농림부장관이라는 막중한 소임을 맡고 있고, 한편으로 국회조찬기도회장에 이어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장`을 맡고 있으니 어쩌면 내가 15년전에 지녔던 두 가지 꿈의 정점에 와있는지 모르겠다.
독실한 기독교 장로 집안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나에게 신앙과 정치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험난한 정치 역정에서 신앙적 결단이 줄곧 나를 오늘에 이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고, 그와 같은 신앙적 힘이 없었다면 나는 민주화 운동가로서, 농어민의 대변자로서 꿋꿋하게 한길을 걸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93년 제네바 GATT 본부앞에서 `쌀 시장 개방 반대`를 위한 15일간의 삭발 단식 투쟁, 2001년 일본 중의원 앞에서의 역사 교과서 왜곡 시정을 촉구하는 7일간의 금식 기도 단행 등 역사의 고비마다 나는 신앙적 힘에 의해 그같은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국회조찬기도회장을 맡으면서는 국제적인 의회 선교 활동과 의원 외교를 펼쳤다. 일본, 대만, 러시아 등에 정치권 구조 복음화의 일환으로 국가조찬기도회가 설립되도록 산파역을 하였고, `한ㆍ일 기독의원연맹` `세계기독교의원연맹(WCPA)` 그리고 40개국 105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한 `국제농어업의원연맹(IPAAF)`의 창설자 및 초대 의장으로서 활발한 국제적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신앙과 정치가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겐 특별한 것도 아니요 불편한 것도 아니다. 신앙과 정치의 일치는 나에겐 편안한 의복이요, 맛있는 음식이요, 안락한 가정이요 곧 생활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정신에 충실하게 정치를 한다면 우리 정치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 틀림없다.
<김영진 농림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