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복지재원 마련·관료 개혁 겨냥한 '양수겸장' 추경 원점 재검토·자녀수당 늘려 자민당과 차별화 관료들이 휘두르던 예산 전권 빼앗아 기득권 제어 얀바댐등 前정권이 추진하던 사업들 속속 제동
입력 2009.09.02 18:10:01수정
2009.09.02 18:10:01
일본 민주당이 대대적인 예산 수술에 들어갔다.
예산 손질은 복지 확대라는 민주당의 핵심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지만 자민당 정권과의 단절이라는 상징성이 더 크다. 또 관료 기득권 세력을 제어하는 장치로도 매우 효과적이다. 앞으로 4년간 일본을 이끌게 된 민주당은 앞서 "예산을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일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의 민주당이 추경 예산에 편성된 기금 1조7,000억엔을 동결하기로 하는 등 자녀수당 등의 선거공약 재원 염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보도했다. 지출이 동결된 자금은 긴급 인재육성ㆍ취직지원기금 7,000억엔, 농지집적가속화기금 2,979억엔, 클린가전보급촉진기금 2,946억엔 등이다.
민주당은 자민당의 아소다로(麻生太郞) 정권이 경기부양을 명분 삼아 당초 목적과는 동떨어진 추경 사업을 편성, 효과는 없이 돈만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민주당은 지출을 동결한 기금 예산을 주요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자녀수당과 농가소득보상제 재원으로 돌릴 방침이다.
우선 추경 예산을 손보는 것은 자민당 정권과의 차별화 선언이다. 이 작업을 통해 '예산 노하우'를 행사해온 관료조직에 대한 확실한 경고도 전달하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속내다. 예산 수술은 민주당이 내세운 정치와 경제 이념을 구현하고 새로운 정권이 탄생했음을 일본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내년도 예산 역시 전면적인 재수술을 앞두고 있다. 자민당 시절에는 사실상 중앙관료들이 예산에 관한 전권을 휘둘렀다.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정치권이 이를 되찾아와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생각이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정권 교체기임에도 민주당의 눈에 거슬리는 요구를 한 것은 환영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재편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중앙관가를 겨냥했다.
자민당 시절 기세등등하던 관료들도 슬슬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농업정책을 비판해왔던 농림수산성의 이데 미치오(井出道雄) 사무차관은 민주당의 농가소득보전제도에 대해 "새 대신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경제산업성의 모치즈키 하루후미(望月晴文) 사무차관은 민주당의 예산 전면 재검토 방침에 대해 "집권자가 정한 룰을 전제로 판단하겠다"며 민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임을 시사했다.
실제 민주당 정권 탄생이 임박하면서 자민당 정권에서 추진해온 사업들에 속속 제동이 걸리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지난 1일 1952년부터 추진돼온 '얀바댐'의 본공사 시공업자 입찰을 백지화했다. 얀바댐은 군마(群馬)현에 건설 중인 저수량 1억톤의 급수용 다목적댐으로 4,600억엔의 총사업비 가운데 이미 3,217억엔이 투입됐다.
하지만 신규댐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효용성이 없다며 댐 건설을 중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다니구치 히로아키(谷口博昭) 국토교통성 사무차관은 민주당의 대형 공사 재검토에 "낭비 요소가 많다. 고비용이라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새 대신(장관)의 지시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자민당 집권기에 예산은 성ㆍ청이 재무성에 8월 말까지 다음해 예산 요구액을 제출해 이를 토대로 가을에 예산 실사작업을 벌여 12월 말께 정부의 예산안이 확정되고 매년 1월 정기국회에 제출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올해는 민주당이 전면 재검토를 공언한 이상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하토야마 정권으로서는 자녀수당 신설, 의료보험 개혁 등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도 예산안 손질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오는 2013년까지 필요한 재원만 16조8,000억엔에 이른다. 이는 일본 정부예산 207조엔(올해 기준)의 8%, 국내총생산(GDP)의 3.4%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