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산업경쟁의 패러다임이 완제품 중심에서 부품ㆍ소재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 부품ㆍ소재 분야가 산업경쟁력의 핵심요소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부품ㆍ소재가 완제품 생산비용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부품ㆍ소재 분야를 장악하는 기업이나 국가가 세계경쟁에서 최종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산업자원부, 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등과 공동으로 국내 부품소재 산업의 현황과 기술개발, 성공기업 탐방, 인력부족 해결방안, 새로운 도약과 과제 등을 심도있게 살펴보고, 우리나라 부품소재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점검해 보고자 한다.
◇허울뿐인 부품소재 산업=우리나라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있어 부품소재가 아킬레스건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들어 지난 11월말까지 누적 무역흑자가 134억달러에 달했다는 반가운 소식 이면에는 누적 대일 무역적자가 167억달러를 넘어섰다는 어두운 수치가 숨어있다. 반도체, 휴대폰 등 수출효자 품목의 내부를 뜯어보면 배터리, 음향부품, 동영상 보드 등 대부분이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
완제품 수출로 거두어들인 흑자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일본 등 해외에서 들여오는 핵심부품과 소재 수입도 늘어나는 기형적인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경제 강국들은 예외없이 기존 단순제조 단계를 거쳐 핵심부품ㆍ소재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고부가 경제구조를 정착시켰다"며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일부 고가의 첨단제품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핵심부품ㆍ소재를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낮은 부가가치만을 얻게 된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 경제전체에서 차지하는 부품ㆍ소재산업의 위상과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부품ㆍ소재산업은 2001년말 기준 제조업 전체 생산과 부가가치의 46%를 차지하고 있고, 고용 역시 제조업 전체 고용의 41%를 담당하고 있다. 비록 일본과의 무역에 있어서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교역규모 전체를 본다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0%를 맡고 있으며 올해까지 7년 연속 흑자를 기록해 온 효자 산업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속빈강정의 현실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부품ㆍ소재기업의 90%가 종업원 50인 이하 중소기업으로 자체적으로 혁신역량을 갖추기 보다는 대기업의 단순 하청기업으로 머물고 있는 산업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벤처자금도 엔터테인먼트나 완제품으로 쏠려 자금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규모도 영세한데다 인력과 자금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시장에서 협공당하는 부품ㆍ소재=이 교수는 "중국은 2010년쯤이면 대다수 부품ㆍ소재 품목에서 기술적으로 우리나라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결국 주력시장인 중국시장 상실, 세계 무역시장에서의 경쟁력 저하로 직결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한ㆍ일 자유무역협정(FTA)도 일본산 핵심부품소재의 가격경쟁력을 더욱 높여 그나마 배양되고 있는 기술추격의 가능성마저 사라지게 할 우려가 있다.
중국은 우리나라와의 기술격차를 줄이고 있고 일본은 가격경쟁력을 더욱 배가해 국내시장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겉으로 벌고 속으로 까먹는 산업구조가 현실화될 위험이 높아지는 셈이다. 실제 휴대폰을 비롯해 컴퓨터, CD롬, 비디오카메라 등 차세대 주력제품의 부품ㆍ소재 수입의존도는 무려 50~60%에 달하는 실정이다.
부품소재통합연구단 김진수 부장은 "외국의 경우 부품ㆍ소재 업계가 대형화, 전문화를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영세업체들이 폐쇄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며 "전문적인 투자조합을 만들고 고급인력 공급을 원활히 하는 등 정부가 제도적인 대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명기자 vicsj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