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광을 담은 사진과 단아한 한옥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사진제공=(재)아름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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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시리즈로 유명한 사진작가 배병우가 경남 함양의'아름지기 한옥' 툇마루에 걸터 앉아 자신의 작품세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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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만난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에게 배병우의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선물했다. 대통령도 인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배병우가 전시장에서 벗어나 전통 한옥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23일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민간 비영리단체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경남 함양한옥에서 '함양사진전'을 시작한 그를 만났다. 배병우는 창덕궁 촬영을 계기로 '아름지기'와 인연을 맺었고 출사지를 찾아 경상도를 오가다 이곳에 묵으며 2007년부터 함양 봉전리와 서상면, 거창 수승대 등 인근 풍광을 사진으로 담았다.
◇배병우의 소나무=배병우는 바다와 오름 같은 한국적 자연을 즐겨 찍어오다 동양성을 함축한'소나무' 연작으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경주 계림에서 소나무를 찍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 지역이 사진 동호인들로 북적이게 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경주의 신라왕릉이나 서울근교 조선 왕릉 주변의 소나무들은 섬기기 위해 심은 성스러운 나무라 그런지 훌륭합니다. 해송은 힘이 있지만 품위가 덜하고 금강송은 늘씬하지만 화가가 좋아할 법하지 제 사진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저는 강한 힘과 품격을 모두 가진 육송이 좋아요. 그 힘을 표현하기 위해 둥치를 중심에 두고 찍죠. 지금은 통도산과 가야산에서 소나무를 찍습니다."
작가는 1983년 무렵 '한국성'의 상징으로 '소나무'를 찾아냈다. 배씨의 진가는 일본에서 먼저 알아봤다. 94년 일본 근대미술관에서의 전시는 그가 국제적 명성을 쌓는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배병우는 일본에서 '미스터 마쓰(松ㆍ소나무)'로 통한다.
◇배병우의 렌즈에 담긴 궁정들=지난 13일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 내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영혼의 정원(The Soul Garden)-알함브라와 창덕궁' 전시가 2개월의 여정을 끝낸 뒤 배씨에게는 '소나무작가'에 이어 '유네스코 궁정 전문가'라는 별칭이 붙었다. 둘 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유서 깊은 궁궐이기 때문.
"2006년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 소나무 사진전을 본 알함브라궁의 문화재 관리책임자가 촬영을 의뢰해 3년간 15번이나 찾아가 속속들이 찍었어요. 궁 안쪽에 정원이 있는데 가장 큰 나무가 바로 소나무더군요. 동양인의 시각으로 본 알함브라궁 정원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창덕궁은 1974년에 처음 찍은 뒤로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가 촬영해 전시와 책까지 내보이게 됐습니다."
'궁궐전시'는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이어진다. 다음달 1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그의 대규모 회고전이 막을 올린다. 1층에는 알함브라와 창덕궁, 2층에는 대표작인 소나무 사진 등이 걸린다.
◇사진은 손보다 발=배병우와 그의 부인은 생년월일(1950년5월22일)까지 같아 자웅동주(雌雄同株)인 소나무가 부럽지 않은 천생배필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가족을 남겨둔 채 먼저 세상을 떠났고 배씨는 부부의 추억을 담은 작은 사진전으로 지난 8월 10주기 제사를 대신했다. 이런 은근함과 우직함을 가진 그는 수없이 받았을 '사진을 잘 찍는 법'에 대한 질문에 '손이 아닌 발'이라는 답을 내 놓았다.
'어떻게 찍느냐'보다 '그렇게 찍힐 수 있는 대상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해 발이 부르트도록 다닌다는 얘기다. 소나무를 찾아 일년에 10만km씩은 돌아다녔다고 한다. 배씨는 "그냥 손으로 들고 찍는 건 나도 쉽지 않아 발(삼각대)을 써야 한다" 라며 눙쳤다.
다음날 아침, 작가는 채 동이 트지 않은 5시 무렵 근처에서 찾아낸 200살 수령의 소나무를 찍기 위해 한옥집을 나섰다. "새벽은 빛과 생명이 시작하는 순간이라 제일 좋다"라면서…. 이번 한옥전시는 연말까지, 덕수궁 전시는 12월6일까지 열린다.
잘 알려졌듯 그의 작품은 2005년 영국의 팝가수 앨튼 존이 1만5,000파운드에 구입해 유명세를 탔고2007년에는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가 1억원을 넘겼다. 국제미술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작가로 이우환과 배병우(Bae Bien-U로 활동)가 손꼽힌다. 벨기에의 필립 왕세자부터 프랑스 까르띠에와 시슬리 화장품, 스페인 의류업체 망고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인기를 아시아의 입지강화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 덕분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왜 시대에 뒤쳐지는 소나무를 찍냐는 소리를 들었는데 중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가 부상하니 동양성에 대한인식이 바뀌더군요.
문화도 국력인 것이죠. 여기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 같은 조짐이 자연에 대한 유럽인들의 태도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장엄하게 그린 18세기 낭만주의(Romanticism)와 같은 정신이 되살아 난 탓이죠." 그의 컬렉터는 국내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 더 많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