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파커 |
|
■ 와인의 정치학
■ 타일러 콜만 지음, 책보세 펴냄
'입안에 퍼지는 송로버섯의 향기' '달콤하고 쌉싸름한 여운' '신의 물방울'… 와인에 대한 다양한 예찬이다.
'와인을 아는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비즈니스에서 와인은 이제 없어서는 안될 필수 아이템이다. 역사적으로도 와인은 몸과 마음을 피폐시킨다고 인식된 다른 주류와 달리 절제와 중용의 상징으로 칭송 받아왔다. 20세기 당시 의사들은 알코올 중독을 이기기 위해 차라리 와인을 마시라고 환자들에게 주문할 정도였다.
와인 하면 프랑스 보르도가 떠오른다. 2005년 보르도에서 햇포도로 만든 와인 한 병이 2,000달러를 호가했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귀하신 몸이었다. 그러나 그 해 프랑스의 많은 포도 농장이 파산했다. 1995년 1만5,000 곳에 이르던 포도 농장은 2005년 1만 곳으로 줄어들었다. 포도농장에서 생산된 1,800만 리터의 와인은 모두 연료첨가물인 에탄올로 사라졌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와인학을 가르치는 타일러 콜만 교수는 이를 와인에 얽힌 정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화려하고 우아한 이미지에 가려진 와인 산업의 그늘을 조명한다.
출발부터 달랐던 미국과 프랑스 와인산업의 역사를 비교하고, 재배업자와 중개상인들에 의해 정해지는 와인의 등급제도, 와인 평론가에 의해 판매가 좌우되는 마케팅 매커니즘 등 와인 라벨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 역학관계를 조명한다.
저자는 미국의 소비자들이 '유통독점법'에 따라 마음에 드는 와인을 구매할 수 없는 것도, '와인의 황제'이자 '와인의 독재자'라 불리는 로버트 파커의 손끝에 의해 양조장의 운명이 바뀌는 것도 바로 와인의 정치학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먼저 18세기까지 와인을 마시지 않았던 미국이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와인 소비ㆍ생산국이 된 배경을 소개한다. 로마시대부터 포도를 키우고 와인을 생산하면서 자생적으로 성장했던 프랑스와 달리 18세기까지 미국에서 포도는 특별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와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대사로 임명됐던 토마스 재퍼슨이 프랑스 등 와인 재배 지역을 여행하면서 챙겨온 와인이 소개된 이후부터다. 그런데 왜 하필 캘리포니아가 신대륙 와인의 대명사가 됐을까. 1850년대 골드러시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금광으로 돈을 번 부자들이 캘리포니아에 와인 농장을 대거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풍족한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와인 산업이 성장하는 동안 와인 종주국 프랑스는 시련을 겪게 된다. 1875년 '포도나무뿌리진디병'이 번지면서 프랑스 남부지방 일대 포도나무가 말라죽게 됐다. 전염병이 확산되면서 프랑스산 와인 생산이 줄어들어 결국 와인 가격은 폭등하게 됐다.
저자는 그 밖에도 미국의 주류 생산 판매법의 정치적 기원과 규제 시스템,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평론가와 제조업자, 기술, 그리고 환경 문제 등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보르도 와인이 세계 최고의 와인이 된 후 원산지를 속이는 사기가 판을 치고, 1930년대 미국전역에 내려진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취하지 않게 하는' 과일즙이라는 해석으로 캘리포니아 와인 양조장이 신대륙 와인의 명맥을 유지했던 에피소드 등 역사적 사건을 씨줄과 날줄 삼아 와인의 라벨에 숨은 이야기를 태피스트리로 엮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