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의 최대 걸림돌로 부상했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해 정부가 오는 21일 당초 입장대로 보험약 등재 방식을 ‘포지티브(선별등재)’ 방식으로 바꾸는 내용의 개정 규칙을 입법 예고한다. 이에 따라 2차 협상에서 미국의 강한 반대입장 표명으로 힘을 얻은 외국계 제약사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17일 “건강보험 의약품 등재 방식을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 방식으로 바꾸는 내용의 ‘건강보험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21일 입법 예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모든 의약품을 보험적용 대상으로 등재(네거티브 방식)해 보험약 시장 진입장벽이 사실상 전무했다. 그러나 포지티브 방식은 개별 의약품마다 약효ㆍ경제성 등을 종합 평가해 등재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진입 문턱이 높아지게 된다. 이를 통해 보험약의 ‘양적 효율성’을 유도,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부담을 낮추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개정 규칙에 따르면 앞으로 모든 의약품에 ‘경제성 평가’가 적용되고 ‘약가 협상’ 규정이 신설된다. 먼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내의 ‘약제급여평가위원회’가 의약품 경제성 평가를 실시하고 여기에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해당 제약사와 개별 가격협상을 벌이게 된다. 이후 가격협상이 이뤄지면 복지부 ‘약제급여조정위원회’가 보험적용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만약 협상이 결렬될 경우 약제급여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 재량으로 등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미국ㆍ프랑스ㆍ호주ㆍ덴마크ㆍ네덜란드ㆍ이탈리아ㆍ그리스ㆍ포르투갈ㆍ뉴질랜드ㆍ핀란드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80%인 24개 나라가 이 같은 포지티브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포지티브 방식은 당장 외국계 제약회사의 극심한 반발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 제약회사 모임인 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정부의 포지티브 리스트 전환 방침에 대해 “복지부 약가정책이 결과적으로 우수한 해외 신약의 국내 공급을 제한하고 제약사의 신약개발 의지를 꺾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특히 “보험적용 대상에 오르지 못한 신약의 경우 결국 환자들이 고액의 부담을 치르게 돼 ‘신약 접근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반대논리를 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정규칙이 논란 끝에 내년부터 시행되더라도 제약회사들의 줄소송이 이어질 예정이다. 정부와의 가격협상에 실패한 제약사들이 행정처분 취소 청구소송 등 다양한 법적 구제책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의약품 시장은 신약 등 수 많은 독점시장이 혼재해 있는 매우 복잡한 시장구조”라고 전제한 뒤 “외국계 제약회사의 우려와 달리 정부가 종합적으로 보험적용 대상 의약품을 평가해 선정할 수 있다”고 제도 시행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편 박인석 복지부 보험급여기획팀장은 “21일 개정규칙이 입법 예고되면 각계의 의견수렴 과정과 규제개혁위원회ㆍ법제처 심의 등을 거친 뒤 연내에 공포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