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부담·금융사 반발등 논란클듯
■ '공적자금 성과·대책' 보고서
정부가 27일 발표한 '공적자금의 성과와 상환대책'이란 보고서는 공적자금을 누가 얼마만큼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공적자금은 외환위기로 수렁에 빠진 국가경제를 건져내기 위해 금융기관에 수혈됐으나 집행과정에서 권한과 책임의 문제가 모호했을 뿐만 아니라 상환에 대한 대응책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게 저간의 사정이다.
외환위기 이후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을 감안하면 정부의 공적자금 상환대책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정부는 이 보고서를 통해 ▲ 공적자금의 짐을 현 세대에서 해결할 것과 ▲ 상환은 수혜자 분담의 원칙에 따라 처리한다는 두가지 원칙을 마련했다.
그러나 공적자금 회수 추정규모가 너무 낙관적인데다 국민들이 져야 할 부담도 적잖은 것으로 나타나 큰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대표적인 수혜자인 금융회사들의 반발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 공중에 날린 돈 87조원
정부 보고서의 핵심은 공적자금 수혈로 인한 손실규모가 정확하게 어느 정도이며 어떤 방식으로 빚을 갚을 것인가에 있다.
정부가 삼성경제연구소ㆍ금융연구원ㆍ조세연구원 등에 용역을 의뢰하고 평가단과 실무작업반으로 구성된 작업반(태스크포스)까지 운용한 것은 그만큼 손실규모를 측정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금융기관에 투입된 돈은 예보채 발행 104조원, 회수자금 32조원, 재정자금 20조원 등 모두 156조원. 정부는 이미 회수한 42조원을 빼고 추가로 회수할 수 있는 공적자금 규모를 45조원으로 추정했다.
회수여건이 비관적일 경우의 41조원과 낙관적일 경우의 49조원의 중간치를 산정한 금액이다. 이렇게 되면 회수율이 55.6%에 달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손실금액으로 추정한 69조원은 전체 투입금액으로 본 156조원 가운데 회수 가능할 것으로 보는 87조원을 뺀 수치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가 예보채의 이자대금으로 재정융자특별회계(재특)에서 물어준 18조원에 대한 상환의무를 면제함에 따라 손실금액은 사실상 87조원에 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특에서 나간 돈도 국민들의 혈세로 모아진 돈이기 때문이다.
▶ 현 세대가 빚문제 해결
외환위기의 책임이 있는 현 세대가 공적자금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해결의 주체는 수익자가 돼야 한다는 게 정부 상환대책의 주요 골자다.
정부는 1세대를 30년으로 보고 공적자금 투입 후 지난 시간 5년을 뺀 25년 동안 공적자금을 모두 상환할 계획이다.
갚아야 할 금액은 지난 3월 말 현재 예보채 발행잔액 82조원, 자산관리공사채 발행잔액 15조원, 세계은행(IBRD) 차입자금 2조원 등 모두 99조원. 정부는 회수자금으로 30조원을 갚고 나머지 69조원은 금융권과 재정이 갚도록 할 계획이다.
금융권의 상환은 앞으로 25년 동안 0.1%의 특별보험료를 신설 부과해 20조원을 거둬들이고 재정부담은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인상하는 방법보다는 조세감면 축소와 재정지출 감축을 통해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어떻게든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이 새로 져야 할 부담은 예대마진 확대나 수수료 인상 등으로 결국 예금자들의 부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재정을 아껴 빚을 갚는다는 계획도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 남은 숙제는
공적자금이 파탄지경의 국가경제에 기력을 주고 대외신인도를 높인 것은 사실이다. 넓게 생각하면 모든 국민들이 공적자금의 수혜를 입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수혜자가 손실을 부담하는 원칙도 맞다.
문제는 정부의 공적자금 상환대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러나 8ㆍ8보궐선거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은 공적자금 상환을 놓고 한바탕 혈전을 준비하고 있어 국론분열만 자초할 우려가 높다.
여기에 예금보험료를 지금보다 두배나 더 부담해야 하는 금융기관들의 반발도 무마하기 힘들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앞으로 금융기관이 부실화됐을 경우에 대한 시나리오가 없다는 것. 정부는 지금까지 들어간 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에만 신경을 썼을 뿐 미국경기 침체 등 외부 불안요인에 의해 당장 금융기관이 부실화될 경우에 대한 대응책은 마련하지 못했다.
박동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