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이 막대한 현금을 쌓아둔 채 투자를 외면함에 따라 지나칠 정도로 소비지출만 의존하고 있는 최근의 경기 회복세가 꺾일 경우 큰 위기에 부딪칠 수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경제컬럼니스트인 로버트 사무엘슨은 22일자 ‘위험을 꺼리는 자본가들’이라는 컬럼에서 미국 기업들이 순이익 증가에 힘입어 발생한 배당금 지급을 늘리거나 사내유보현금을 확대하는 반면 투자는 게을리하고 있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사무엘슨의 이 같은 경고는 재투자는 꺼린 채 현금비축만 늘리고 있는 국내기업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무엘슨은 지난 2001년 이후 미국 기업의 세후 순이익은 무려 70% 이상 늘어났으며, 기업은 순이익을 주로 배당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주거나 사내 유보로 쌓아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탠다드 앤 푸어스(S&P)에 따르면 S&P 500지수에 편입된 기업들의 경우 올해 현금배당규모는 총1,850억달러로 지난해의 1,610억달러보다 15% 증가했다. 여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특별 배당금 320억달러는 빠져 있다.
특히 기업들은 벌어들인 돈을 재투자하지 않고 은행에 예치하고만 있을 뿐이다. 지난 2001년 이후 기업의 현금보유액은 42%나 늘어 현재 1조3,000억달러로 사상최대에 이르고 있다. 반면 기계, 공장 등에 대한 투자는 같은 기간 18% 느는데 그쳤다. 특히 MS 등 정보기술(IT) 관련 업체들의 경우 현금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MS는 247억달러, 인텔은 158억달러, 델은 83억달러의 현금을 비축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막대한 현금을 쌓아둔 채 투자를 외면하는 데는 사베인스-옥슬리 법에 따른 회계투명성강화 등 규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위험회피 경향이 더 큰 요인이다. 이와 함께 지난 2000년대 초의 정보기술(IT)거품의 붕괴, 9ㆍ11 테러 등으로 기업인들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것도 재투자기피-현금비축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안전만 추구하고 위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확산되면 장기적으로 엄청난 파국을 몰고 올 수도 있다. 현재 미국 기업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미래의 성장을 희생시키고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물론 투자할 만한 이렇다 할 신수종(新樹種)사업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은 지나칠 정도로 소비지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심리가 꺾일 경우 경기는 급랭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규 고용이나 투자를 더욱 축소하게 되고, 결국에는 기업으로서는 제 살을 깎아먹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