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세계경제의 역학관계 속에서 소외돼 있던 제3국들이 빠르게 힘을 모으며 새로운 무역질서를 예고하고 있다. 지금 그 변화의 중심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이는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디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다.
26일 브라질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인도간에 자유무역협정(FTA)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특혜무역협정(PTA)이 체결됐다. 인도를 방문 중인 룰라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인도와 브라질이 힘을 모으면 세계 교역지도를 바꿀 수 있다”며 개발도상국간의 결속을 강조했다. 미국 등 경제대국을 중심으로 좌지우지되는 국제 무대에서 더 이상 `경제 열등생`으로서의 설움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열등생들이 선택한 전술은 `협력`이다.
이미 룰라 대통령은 지난해 11월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해 남아프리카 5개국을 순방하면서 남미와 남아프리카 주요 개발도상국들간의 FTA 체결을 위한 전략적인 첫걸음을 뗐으며, 한달 뒤인 12월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지역을 방문해 중남미와 아랍간의 경제공동체 구축을 제의하기도 했다. 이제 룰라 대통령은 빠르게 성장해가는 인도와의 경제협력을 가시화하기 시작했고, 오는 5월에는 떠오르는 세계경제의 중심점인 중국 방문까지 예정하고 있다. 룰라의 구상대로 남미와 남아프리카ㆍ인도가 전략적으로 뭉치고 여기에 중국까지 힘을 더한다면 국제 정치ㆍ경제의 틀이 재편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렇기에 세계가 룰라 대통령의 외교 행보에 주목하는 것이다.
27일 한국과 싱가포르의 FTA 협정을 위한 협상이 시작됐다. 또 지난 22일에는 칠레 상원이 특별 본회의를 열고 한국과의 FTA 비준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며 오는 2월9일 있을 한국 국회의 비준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다른 나라와의 경제협력 협상을 진행하며 그 득(得)과 실(失)을 따져왔다고 하지만 한국은 현재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 중 몽골과 더불어 유일하게 한 개의 FTA도 맺지 못한 `경제 왕따`임이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세계경제의 흐름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로서는 경제협력 과정에서 파생되는 눈앞의 실보다는 거시적으로 얻게 되는 득에 초점을 맞춰나가는 게 옳은 시각일 듯싶다.
<최원정 국제부기자 abc@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