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대북송금문제에서 논쟁의 핵심은 사업대가인지 정상회담 대가인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야 정부를 막론하고 이 돈이 사업 대가면 문제가 없고 정상회담 대가면 문제가 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정상회담 대가로는 한푼도 주지않았다고 했다가, 돈이 건네진 것이 드러나자 기업이 준 것이므로 사업대가이지 회담대가가 아니라는 뻔한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의미한 대가성 논란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어느 것이냐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고, 성격상 분리하기도 어렵게 돼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한 당국자간 예비회담 단계에서부터 현대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는 것은 이 돈의 성격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현대가 북한에서 30년간 독점사업권을 따낸 것은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획기적인 일임에는 틀림없다. 독점사업권은 독점적 이익이 보장되는 사업권이다. 정부가 보장하는 독점이익이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사업이다. 그래서 정부로부터 독점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그러나 대북사업이 과연 그런 모습이었던가. 무엇보다 이익의 보장이 확실치 않다. 현대가 북한으로부터 따냈다는 7대 사업은 대규모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 개발사업이다. 북한의 열악한 재정상태에 비추어 현대의 자체자금 아니면 남한정부의 남북경협예산이나 국제자본과 합작으로 수행해야 할 사업이다. 그런 사업은 30년이 아니라 1년만 잘못해도 망하기 십상이다. 대북송금이 이뤄진 2000년 6월 당시 현대는 수익사업으로 금강산관광사업을 2년째 하고 있었지만 적자누적이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
수익보장은 없고, 투자부담만 있는 사업의 성격 때문에 고 정주영 회장의 남다른 애향심이 사업의 동력이 되었던 현대 외에 경쟁자가 없었다.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에 대가를 주었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이 말이 사리에 맞기 위해서는 정부가 대북사업으로 인한 현대의 손실을 메워주기로 약속했어야 한다. 그러나 보다 책임 있는 정부였다면 국가경제 관리 차원에서 현대그룹이 대북사업으로 위험에 빠지는 사태는 막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현대상선은 “우리가 쓰지 않았으므로 갚을 수 없다”고 버텼던 2,350억원을 지난 해 알토란 같은 자동차수송사업을 팔아 갚아야 했다.
20억달러에서 2억달러 까지 현대의 대북송금액수는 종잡을 수 없지만 현대그룹의 해체가 무모한 대북투자와 관련된 것임은 분명하다. 대북지원 의혹에 연루된 건설 상선 전자의 현주소가 그것을 말해 준다. 현대관련 기업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청와대의 관계자는 대북사업의 실체가 밝혀지면 현대가 망한다고 강변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대북송금은 사업대가 이기 보다는 오히려 정상회담의 대가라고 하는 쪽이 정상회담의 역사성으로 보아 더 떳떳하다. 사업비용이건 정상회담 비용이건 통일비용이긴 마찬가지다.
검찰이든 특검이든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 해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은 사법적 심사가 부적절하며, 남북관계는 전면공개가 어려운 면이 있다고 했다. 전면공개가 어렵다는 말은 부분공개는 가능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부분공개라 해도 내용은 핵심적인 것이어야지 지엽말단적인 것이어서는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국익과 외교관계 때문에 부득이 밝힐 수 없는 내용에는 거짓말이 아니라 묵비권을 행사토록하고,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면 어떨까 한다.
`돈 무서운 것` 깨달아야
대북송금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는 비유컨대 공돈을 받아서 쓸 줄만 알지, 돈이 무서운 줄도, 돈의 대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물인 것 같다. 그가 돈이 무섭고, 정직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