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납품가 후려치기 도 넘었다] 예산 절감 명목으로 똬리 튼 MAS, 중기 존립 위협하는 주범

2단계 경쟁 의무 적용 내년부터 대상 확대 '납품가 1원' 더 늘듯
"손해 보더라도 실적유지" 중기는 울며 겨자먹기

정부와 공공기관이 공공구매를 하면서 최저가 입찰로 중소기업의 납품가를 1원으로 깎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 제조현장. 서울경제DB


#. 서울의 한 중소 가구업체 A사는 최근 한 공공기관 조달 입찰에 참여해 일반경쟁제품으로 분류되는 이동식 서랍장 가격을 단돈 '1원'으로 적어냈다.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인 다른 품목을 어떻게든 팔아보기 위해 가격 하한선이 없는 일반경쟁제품 단가를 1원으로 낮춘 것.

A사뿐만 아니라 낙찰된 다른 업체를 비롯해 여러 중소 가구업체들이 이동식 서랍장의 납품단가를 '1원'으로 써낸 것으로 나타났다. A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다수공급자계약제도(MAS) 2단계 경쟁 도입 후부터는 최저가 방식이 선호되면서 납품해봤자 이익이 거의 남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와 공공기관으로부터 사실상 1원 납품을 강요 받아 존립이 위태로워지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비명이 산업현장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대기업들에는 납품가를 깎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던 정부ㆍ공공기관이 오히려 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들에 상식 밖의 공급가격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현상 이면에는 예산 절감만 추구하는 MAS가 또아리는 틀고 있다는 게 중소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관행이 된 1원 입찰=대한가구공업협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가구업체들이 많이 납품하는 초중고등학교는 학교 비리 근절 등을 이유로 예외적으로 MAS 2단계 경쟁기준이 2,000만원밖에 안 되는데다 교실용 책걸상은 사무용과 다르게 일반경쟁제품으로 분류되다 보니 보통 20~30%는 할인한다"며 "보통 하나의 입찰에 중기 간 경쟁제품과 일반경쟁제품을 모두 납품하게 되는데 일반경쟁제품은 손해를 보더라도 '1원 입찰'까지 하는 일이 빈번히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B사의 한 관계자도 "보통 MAS 물품 등록 당시부터 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계약을 하는데 하한선도 없는 최저가 가격경쟁을 한번 더 붙이니 수익률이 엄청나게 떨어졌다"며 울상을 지었다. 또 C사의 한 관계자는 "MAS의 다량납품 요구에 대한 인하율 적용 방식을 택할 경우 (인하율이 최대 10%로 규정된) 중기 간 경쟁제품이라도 10%를 넘는 할인이 종종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조달가 후려치는 MAS=이처럼 중소업계가 조달가 후려치기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MAS는 내년 1월1일부로 의무 적용 범위가 현 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확대된다. 새누리당 등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대기업의 납품가 인하 강요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판국에 정작 중소기업의 조달 납품가를 1원으로 떨어뜨리는 황당한 일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MAS란 조달시장에서 수요기관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2006년 마련된 제도다. 현재 조달청 나라장터 쇼핑몰을 통해 거래되는 물량 가운데 30% 이상을 차지한다. MAS에서 처리되는 연간 35만건 가량의 입찰 건수 가운데 30만건 내외를 중소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MAS가 중소업계의 원성을 사게 된 것은 2008년 MAS 2단계 경쟁이 도입되면서부터. 중소기업은 1억원 이상, 대기업은 5,000만원 이상 규모의 발주에 대해 정부ㆍ공공기관들이 물품을 등록한 업체 가운데 5개 정도의 회사를 뽑아 다시 한번 경쟁시키는 게 2단계 경쟁의 골자다. 수요기관은 ▦가장 낮은 금액을 낙찰시키는 최저가 방식 ▦가격ㆍ인증 등 여러 면을 복합적으로 평가해 입찰하는 종합평가 방식 중 하나를 택한다. 두 방식은 MAS를 양분하고 있다.

◇가중되는 중기 경영난=D사의 대표이사는 "중소기업들이 경기불황으로 출혈경쟁이 심해지자 손해를 보더라도 실적 유지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조달 납품을 하고 있다"며 "기업이 이익이 나야 투자도 하고 기술개발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조달시장에 참여하는 중소기업들이 잘못된 제도 탓에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다 결국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기청의 한 관계자도 "MAS 2단계 경쟁기준을 추가로 더 내리면 국가 예산은 절약되는 반면 조달 단가가 내려가 중소기업들은 타격을 입을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달청의 한 관계자는 "당초 기업들 사정 때문에 1억원 기준을 고수했으나 국가계약법 원칙을 둘러싼 감사원 지적 등을 감안해 기획재정부ㆍ중소기업청 등과 협의해 5,000만원으로 MAS 2단계 경쟁을 확대 실시하기로 결정했다"며 "MAS 2단계 경쟁기준이 바뀌면서 중소기업들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한번 바꾸기로 결정한 정책을 금방 뒤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다른 제도를 바꿔 보완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지정제도



중기 간 경쟁제품 품목에 지정되면 해당 공공조달시장에는 중소기업만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 지난 2006년 중소기업 고유업종과 함께 폐지된 단체수의계약제도를 대체해 시행되고 있다. 반면 일반경쟁제품으로 지정되면 중소기업법과 판로지원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조달시장 참여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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