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Watch] TV, 바보상자서 만물상자로

더 생생하게… 더 와이드하게… "거실이 싸이 콘서트장 됐어요"


1966년 배불뚝이 흑백 TV 국내 첫선… 평면·LCD·PDP 거쳐 올레드로 진화
퀀텀닷 기술 등으로 화질 선명해지고 영화관처럼 가로 넓혀 입체감 극대화
IoT 시대 TV가 중심돼 가전 제어… 삼성·LG 표준화 주도권 경쟁 치열


60대 중반 최인영씨는 지난해 새로 산 커브드(곡면) 초고화질(UHD) TV를 볼 때마다 세상이 참 빠르게 변했음을 새삼 느낀다. 넓은 화면과 생생한 화질, 웅장한 소리로 영상물을 보고 있으면 집이지만 마치 영화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인데 과거 동네에 몇 대 없는 TV 앞에 수십 명이 몰려들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기 때문이다.

최씨가 TV를 처음 만난 건 지난 1969년,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던 스무 살 때다. 당시 만화가게에서는 극장처럼 입장료를 받고 TV를 보여줬다. 권투나 프로레슬링같이 인기 스포츠 시합이 있는 날마다 시작시간과 내용이 적힌 입간판도 입구에 세워졌다. 최씨는 "조그만 흑백 영상에서 프로레슬러 김일이 박치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며 "요즘 나오는 TV들을 생각해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TV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 최첨단 기술이 집약돼 화면은 점점 더 눈으로 보는 현실에 다가가고 있으며 정보통신기술과의 융합으로 PC나 스마트폰과의 경계도 사라지고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5년, 10년 뒤 TV는 지금의 상상을 뛰어넘는 사실감과 현장감, 스마트 기능을 갖출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흑백 브라운관에서 올레드(OLED)까지=TV의 역사는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필로 판스워스가 브라운관 TV를 만든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이로부터 40여년이 지난 1966년이 돼서야 금성사(현 LG전자)가 최초로 국산 흑백 TV를 출시했다.

세계 TV 시장을 주도하던 것은 미국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빠른 속도로 추격해 1980년대에 들어서며 패권을 빼앗아갔다. 일본은 '세이코 엡손'이 1983년 액정표시장치(LCD) TV를, '후지쓰'가 1992년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을 세계 최초로 내놓으면서 새롭게 평판 TV 시장을 개척했다. 콧대 높은 일본을 꺾은 것은 바로 한국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업체들은 미국과 일본을 따라가며 조금씩 기술력을 쌓아오다 2000년대에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1990년대 중반 평면 브라운관 방식의 '명품 TV' 시리즈를 선보인 데 이어 LCD·PDP 후속작을 통해 쌓은 경험에 디자인 역량을 강화했다. 이를 토대로 2006년 출시된 와인잔 모양의 '보르도 LCD TV'는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삼성전자를 세계 1위 TV 제조사 자리에 올려놓는다. 이후 삼성전자와 크기·화질 경쟁을 벌이며 같이 성장한 LG전자가 2위 자리를 굳게 지키는 가운데 지금까지 국내 업체들이 세계 TV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지난해 역시 한국이 TV 시장의 강자임을 다시 확인한 한 해였다. 삼성전자가 출시한 커브드 UHD TV는 새로운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기존 풀HD TV보다 4배나 많은 800만화소로 선명도를 높였고 세계 최고인 4,200R(반지름이 4,200㎜인 원의 휜 정도)의 곡률로 TV 화면을 오목하게 휘어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LG전자도 이에 맞서 지난해 8월 UHD 화질에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적용한 '울트라 올레드 TV'를 세계 최초로 출시하며 디자인과 화질 면에서 세계 최고임을 알렸다.

국내 업체들이 발광다이오드(LED) TV 출시 경쟁과 3D TV 기술력 싸움 등을 겪으며 업계의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완전히 변신한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브라운관에 이어 2세대로 꼽히는 LCD TV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한 가운데 3세대인 OLED TV까지 앞장서면서 장기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감 극대화…가로 비율 높아질 전망=TV의 화질 경쟁은 올해도 이어지는 가운데 오는 6~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쇼 'CES 2015'가 전초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LG전자가 주도하는 OLED TV와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퀀텀닷(양자점) TV 간의 주도권 다툼이다.

OLED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빛을 낸다는 점이다. 기존 LCD 패널은 백라이트라는 별도의 광원이 반드시 있어야 영상을 표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조명부가 필요 없는 OLED는 TV로 만들었을 때 두께를 4㎜까지 줄여 디자인이 뛰어나고 에너지 효율이 높다. 특히 검정색을 표현할 때 OLED는 해당 부분 조명을 꺼 완벽한 검정색을 표현해 명암비 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LG전자는 올해 OLED TV 시장을 확대해 차세대 리더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당분간 TV 시장이 LCD 위주로 돌아갈 것으로 내다보고 기존 LCD를 한 단계 발전시킨 퀀텀닷 TV로 승부하고 있다. 퀀텀닷은 스스로 빛을 내는 미세한 반도체 결정체로 색 순도와 광 안전성이 높은 것이 장점인데 이를 LCD의 백라이트로 활용하는 것이다. 퀀텀닷은 자연색에 가까운 색을 낼 수 있는 색 재현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무엇보다 기존 LCD 생산라인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가격경쟁력이 OLED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둘 간의 경쟁은 화질이나 디자인도 중요한 변수지만 가격 대비 성능을 얼마나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OLED가 화질 등에서 퀀텀닷보다 우세하지만 가격경쟁력을 얼마나 떨어뜨릴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중장기적으로 TV는 현장감과 사실감을 계속해서 높여가는 가운데 영화관처럼 가로 비율이 더 커지는 경향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 길게는 3D 기술의 발달로 10~20년 뒤 홀로그램 영상을 TV로 보는 시대도 열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최진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실감방송미디어연구부장은 "색 영역이 풍부해지고 TV를 통해 볼 수 있는 가장 어둡고 밝은 정도도 확대돼 사실감이 높아질 것"이라며 "특히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커브드 TV가 나왔듯 가로 비율을 넓혀 현장에 있는 느낌이 더 드는 방식으로 TV가 진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3차원 기술이 강화돼 앞으로 무안경 3D TV와 보는 위치와 관계없이 전체에서 입체감을 느끼며 즐길 수 있는 홀로그램 TV로 발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똑똑해지는 TV, IoT 중심에 서다=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가시화하면서 TV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집안의 냉장고와 세탁기·조리기기·보일러 등 모든 가전이 IoT로 연결될 경우 이 중심에 TV가 서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TV는 영상을 쉽고 간편하게 알릴 수 있고 무선센싱기능으로 사람의 동작을 인식해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이런 장점으로 집 안의 모든 가전기기를 제어하는 통로 역할로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방효찬 ETRI IoT융합연구부장은 "앞으로 나오는 TV에는 집안의 네트워크까지 관장할 수 있는 기능이 갖춰져 모든 사물이 TV를 통해 연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TV로 다른 집에 있는 TV와 의사소통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냉장고에 어떤 음식이 얼마나 오래 보관됐는지 알 수 있고 집안의 냉난방을 어떻게 통제할지 모두 제어할 수 있다는 게 방 부장의 설명이다.

특히 이런 기술들은 상당 부분 개발이 완료됐기 때문에 실제 TV로 IoT 세상을 구현할 날은 머지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방 부장은 "지금 기술의 완성도가 80~90%선에 올라 2~3년 안에 상용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가전기기 제조사가 제각각이어서 이를 하나로 묶으려면 통신망의 표준화가 필요한데 각 사가 이해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에 (상용화 시기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IoT 통신망의 표준화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를 두고 가전·통신업체들의 물밑경쟁과 동맹작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텔·델·시스코 등과 오픈인터커넥트컨소시엄(OIC)을 결성했고 LG전자는 일렉트로룩스·퀄컴·소니 등과 함께 또 다른 IoT 컨소시엄인 '올신얼라이언스'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새해 모든 스마트TV에 자체개발 운영체제(OS) '타이젠'을 탑재하겠다고 밝힌 것도 IoT와 관련이 깊다. TV를 중심으로 세계 가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타이젠의 활용도와 경쟁력을 높여 표준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포석이 담겨 있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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