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을 기대하며

한달 남짓 후면 새 정권이 출범한다. 정확히 5년 전 이맘 때도 이름만 그럴듯했던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지금처럼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안겨줬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국민의 정부는 우리들의 소박한 바람을 외면한 채 그들만의 잔치로 일관함으로써 결국 실패한 정권이란 오명을 쓴 채 막을 내리고 있다.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우리는 다시 5년 전과 똑같이 노무현 정권에 대해 불안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가운데 한줄기 희망의 빛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의식이나 한듯 대기업 구조본부 폐지 유도, 상속세ㆍ증여세 완전 포괄주의 전환, 집단소송제 도입, 공직인사 다면 평가, 장ㆍ차관 인터넷 추천 등 국민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개혁안들이 최근 며칠 사이에 봇물 터지듯 인수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실제 추진될 경우 우리사회에 엄청난 변화와 파문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들은 일반 국민들을 잠시나마 기분 좋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효성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당초 목적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기업 구조본부 폐지 유도와 같은 재벌개혁안은 시도하기도 전에 이미 재벌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한 일반 국민들의 장ㆍ차관 추천제도 막상 도입했을 경우 형식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개혁과 변화의 기치를 내건 노 당선자가 과단성 있게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유권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노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현재 노 당선자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안들이 마치 전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착각해 개혁의 기치를 앞세운 채 좌우 돌아보지도 않고 과속으로 달려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지역간의 갈등을 넘어 세대간의 벽마저 쌓도록 한 이번 선거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계층은 지난 대선 때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따라서 새 정권이 과거처럼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다면 5년 후 우리는 똑 같은 자리에 서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토마스 해리스의 베스트 셀러를 각색한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인육을 먹는 범죄자 한니발 렉터 박사는 상원의원의 딸을 구출함으로써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주인공인 FBI요원 클라리스에게 전화로 묻는다. “이제 양들이 조용해졌나” 라고. 이 질문은 이제 우리들 마음속의 분노와 갈등이 해결되었는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새 정권의 출범과 함께 계미년 양의 해 뿐 아니라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들 마음속의 양들이 조용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박민수(정보과학부 차장) mins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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