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차별화 시대, 이제 은행이 금리를 좀더 준다고 고객을 끌어모으는 시대는 지났다. 구조조정이 끝나면서 금융기관을 찾는 또다른 잣대였던 「안정성」 문제도 사라졌다. 역으로 말하면 은행들이 고객을 유인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들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은 대신 고객과의 접촉거리를 가능한 줄인다는 목표아래 각종 이벤트 만들기에 분주하다. 이른바 「RM(RELATIONSHIP MARKETING)」의 강화다.◇봇물을 이루는 은행권 행사= 서울은행은 22일 HSBC로 매각된후 처음 사은행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사은행사 계획은 크게 두가지. 우선 통장예금 100만원 이상 거치식 및 적립식예금 500만원 이상 가입 1,000달러 이상 환전하는 고객에게 금강산여행권·냉장고·미니오디오 등을 탈 수 있는 사은권을 선착순으로 준다. 추첨행사도 병행해 전국 영업점에 비치된 응모권에 월드컵 관련 퀴즈해답을 기재하면, 추첨해 마티즈자동차·컴퓨터·주유권 등을 나눠준다.
지난 18일부터 사업본부제로 조직을 전면 개편한 외환은행도 지점단위로 고객에 대한 밀착영업을 위해 3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지점장이 반상회 등 각종 지역모임 참여 지점주변 청소 자연보호운동 전개 등이 주된 골자다. 어찌보면 「촌스럽다는」 느낌도 주지만, 고객에 다가서기 위한 넓은 의미의 「스킨십 마케팅」이다.
이에앞서 한미은행도 지난 16일부터 영업점을 찾는 모든 고객에게 응모권을 주고, 추첨을 통해 마티즈자동차와 텔레비젼 등 각종 상품을 준다.
신한은행은 우수고객에 한해 고객의 생일날 지점장이 직접 기념품을 마련해 전달해주고 있다. 기존에 은행 본점에서 전산에 의해 이루어지던 기계적 마케팅과는 다른 모습이다.
◇평준화시대, 고객을 유인할 수단 만들기= 은행권의 각종 이벤트 만들기는 금융권 환경을 감안하면 필연적 결과다. 금리로 우위를 나타낼 수도 없고,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때처럼 「안전성」을 내세울 수도 없다. 방법은 한가지. 고객에게 은행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더 알리고, 일선 지점의 창구로 고객을 직접 끌어당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고성수 금융연구원 박사는 『은행이 구태의연한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법적인 범위내에서 서비스와 상품을 통해 경쟁한다는 것은 권장할 일』이라며 『과당경쟁 등에 따른 건전성문제는 감독기관이 철저하게 감시하면 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의 한 임원도 『외국에 가면 은행 창구 앞에 자동차를 진열해놓는 경우도 있다』며 단순히 과당경쟁으로만 치부하는 것이야 말로 구태의연한 사고라고 지적했다.
◇문제점은 없나= 고객을 보다 근거리에서 유인하는 것은 분명 권할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정도가 지나칠 경우다. 선발은행의 한 임원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자동차까지 경품으로 내놓는 것은 무리한 감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수적 한국 금융풍토를 지적하는 말이다.
현재의 고객끌어안기가 「반짝경쟁」에 치우칠 가능성도 우려되는 사항. RM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마케팅이다. 사람을 끌어안는 것은 무엇보다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은행에게는 여전히 이런 점이 부족하다. 고객이 은행의 지점장을 알게 될법하면 어느새 다른 지점으로 옮겨 앉는다. 은행의 이른바 「순환근무제」 때문이다. 은행 지점장이 최소한 5년 정도의 기간 속에서 자신이 끌어들인 고객을 최대 수십년간 거래할 수 있는 「뿌리고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김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