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미국서 한국차의 평판

LA인근의 자동차대리점에 가서 보니 현대의 EF쏘나타에 2만달러라는 가격표시가 붙어있었다. 미국시장에서 2만달러짜리 한국차가 팔린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대리점은 지난해에는 크라이슬러와 일제차 간판을 달았으나 올들어 한국차가 잘팔리자 주인이 일제차 간판을 내리고 현대차로 바꿔 달았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보통 딜러들이 두종이상을 한 대리점에서 팔면서 잘 안팔리는 차는 언제든지 창고에 넣고 잘 팔리는 차만을 매장 앞쪽에 전시판매한다고 했다.미국인 사장은 『한국차가 올들어 지난해보다 2배가량 팔리고 있으며 EF쏘나타처럼 인기차종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자동차는 어떤 제품보다 제조회사의 평판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미국인들은 자동차를 구입해서 3~4년정도 탄후 새차로 교체하고 있다. 차를 바꾸려면 자신이 몰던 차를 팔아야 하는데 자동차회사의 이름이 중고차가격을 좌우하고 있다. 즉 아무리 중고차의 상태가 훌륭해도 「어느 나라 어떤 차는 얼마」라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 미국인들이 일제차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일제차의 성능이 우수한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고차가격을 후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현지 딜러가 귀띔했다. 중고차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다. 미국인들은 일제차를 「넘버 원」으로 꼽고 있다. 한국차가 올들어 미국시장에서 날개돋친듯 팔리고 있다. 지난해 보다 판매대수가 60%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판매호조는 한국차의 평판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현대의 대표차종인 EF쏘나타는 미국의 유수언론에서 『일본의 도요타 캠리나 혼다의 어코드에 버금가는 차』라는 호평을 받았다. 엑셀이 처음으로 지난 86년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엑셀은 상륙하자마자 판매돌풍을 일으켜 87년 한해동안 무려 26만여대가 팔리면서 미국 소형승용차시장에서 연간 단일차종 판매신기록을 수립하는 신화를 창조했다. 그러나 엑셀신화는 곧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렸다. 품질보다는 싼가격만 믿고 애프터서비스망조차 갖추지 않은채 무작정 미국시장에 들어간 허점이 바로 드러난 것이다. 『한국차는 품질 나쁜 싸구려차』라는 인식을 미국인들의 머리속에 새기는 우를 범했다. 90년대들어 한국차의 판매대수는 곤두박질 쳤으며 한창때의 절반수준으로 줄었다. 자동차매장마다 한국차의 간판이 속속 내려졌고 한국차는 더 이상 설자리를 잃게 됐다. 『다시 미국에 들어가려면 현대라는 이름을 바꿔야 할판』이라는 자조섞인 말이 나돌았다. 올들어 한국차의 품질이 향상되면서 미국인들의 시각이 조금씩 변해갔다. 또 한국업체들이 무상보증수리기간을 늘리고 할부금리를 인하하는 등 판매를 강화하면서 한국차는 다시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한국차의 부정적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돌리는데 무려 10년이 걸린 셈이다. 우리업체들이 지난 과오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있는 평판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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