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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고를 무시하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반도 합병 조약에 서명했다. 동시에 푸틴은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해준 중국에 사의를 표현했다. 신냉전이란 말처럼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 러시아와 중국이 대결구도를 형성하려는 푸틴의 의도적 행동이다.
크림반도에 대해 중국은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우크라이나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지며 사실상 러시아의 편을 들어주면서도 '불간섭원칙'을 내세워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물론 중국이 우크라이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의 경제협력으로 얻는 이익보다는 유럽과 러시아의 수평적 대치 관계가 더 이익임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중국이 크림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안보외교와 경제이익을 저울질한 결과다. 단순하게 우방인 러시아를 지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국에 중요한 것은 안보외교다. 미국의 아시아 복귀와 일본을 앞세운 중국 포위전략,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러시아와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경제적으로 중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크라이나는 서유럽과 중국의 거대시장을 연결하는 요충지로 중국이 추진하는 철도 실크로드의 중요 기점이다. 또 식량 자급률을 높여야 하는 중국에 우크라이나는 대안 중 하나다. 특히 군 현대화에 우크라이나는 절대적이다. 중국이 지난해 우크라이나에 80억달러의 투자협정을 체결하고 100억달러를 대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판단에 따라 우크라이나가 친러 성향으로 남길 바랐다. 특히 군수산업 협력의 경우 EU가 중국에 무기 운반을 금지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은 중국 군수산업에 큰 타격이다. 실크로드도 마찬가지다. 자칫 실크로드 개발이 중국 자본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EU의 자본이 개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침묵은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중국 내부에 곪아 있는 소수민족 문제는 중국을 침묵으로 이끈다. 중국이 러시아에 대놓고 지지의사를 밝히지 못한 것은 크림반도의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지지할 경우 시짱티베트자치구·신장위구르자치구·대만 등의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막을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자칫 이들이 분리독립 투표를 주장할 경우 이 지역을 포기할 수 없는 중국이 군사력을 앞세워 강제진압을 해야 할 정도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중국 입장에서 소수민족 문제는 소득 불평등과 맞물리며 중국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변수로 꼽힌다. 특히 영국의 스코틀랜드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스페인의 카탈루냐 등의 분리독립 요구가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중국 내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은 중국의 강압적인 통치에 폭력사태로 치닫고 있다. 최근 29명의 사망자와 170명의 부상자를 낸 쿤밍 테러나 지난해 10월 톈안먼 차량 테러 등에서 보듯 중국의 소수민족 분리독립 요구는 중국 내부적으로 무마시킬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과 '중국의 꿈'이란 말로 강한 중국을 내세우는 시진핑 주석은 닮은꼴 통치 스타일을 보인다. 덩샤오핑 이후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쥐고 흔들고 있는 시 주석이나 세 번째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푸틴 모두 중앙집중적인 권력을 지향한다. 특히 군부를 장악하며 권력의 정점에 오르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권력 장악을 위한 개혁에 있어서도 둘은 비슷한 점이 많다. 2004년 푸틴 1기 집권 당시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인 유코스의 미하일 효도르코프스키를 탈세로 구속하는 등 정경유착과 올리가르히(과두재벌) 척결을 내세우며 인기를 끌었다. 시 주석이 저우융캉 전 정법위 서기 겸 상무위원의 기반인 석유방을 공중분해시키고 시노펙의 소유구조를 변화시키는 등 국유기업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점과 너무도 닮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양대 강국의 변화는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한반도가 아시아판 크림반도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지나치다고 판단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전면에 나서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은 필요하다. 중국도 러시아도 자신의 이익에 부합해 한국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반도의 미래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