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내 탓이오


금융회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별로 좋지 않다. 최근에는 저축은행 부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혈세가 투입되고 많은 예금자들이 불편을 겪거나 평생 모아 놓은 재산이 날아가는 경우가 발생했다. 게다가 부실 저축은행의 대주주와 경영층의 파렴치한 경영 행태가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허탈감은 물론, 금융감독당국에 대한 불신의 골도 높아졌다.

이 같은 불신은 강한 규제를 받고 있는 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어려울 때 우산을 뺏는다거나, 고객을 차별한다거나, 금리나 수수료를 충분히 내리지 않는다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는 감추는 등 정보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는다는 등의 불만이 그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금융회사에 대한 불신을 넘어 '금융'자체를 불신하는 시각도 있다.

이 같은 시각을 반영해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과거 개별 금융회사 차원의 미시적인 건전성 감독을 강조하던 것에서 벗어나 가계의 과도한 차입을 억제하는 등 거시적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금융회사가 금융소비자를 충분히 보호하고 있는지도 감시하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융불신 커져

금융업종에 종사하고 있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금융회사와 실물경제, 금융소비자가 과연 갈등 관계에 있는 것이 맞느냐는 의문이 그것이다. 금융회사의 입장에서는 금융소비자의 니즈에 적합한 상품과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더 우량하고 경쟁력 있는 고객을 찾아내 자금을 공급해야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다. 금융소비자와 실물경제를 배신하고 신뢰를 저버려서 오래 살아남은 금융회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금융위기와 같은 특수한 상황은 '금융'의 불완전성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지 '금융회사'가 주도한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인식도 있다. 금융위기는 인간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확대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일부 행태금융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경제 주체들은 집단적 행동으로 인해 상황이 좋으면 경기과열을 초래하고 사태가 나빠지면 깊은 침체를 불러오는 극단적인 경향이 있는데 이를 금융이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즉 거품의 형성과 붕괴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감정이 변덕스럽다는 점에서 찾아야 하며 금융 자체에서 찾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 주요한 결론이다.

그러나 금융업종 종사자가 인정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금융회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어쨌든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는 금융회사가 잘했느냐 잘못했느냐의 문제에 앞서 금융회사가 자신에 기대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느냐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금융, 또는 금융회사에 대한 비난의 밑바탕에는 금융업자들이 제조업 등 실물경제 활동에 기생하고 있다는 사고가 숨어 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수가 제조업 등 실물경제 종사자들의 보수보다 높다는 생각도 일반인들의 분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따라서 금융회사들은 변명에 앞서 고객을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는지, 고객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금융상품이나 서비스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아울러 금융소비자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금융소비자 교육 강화를 통해 고객의 자기결정 능력을 높여줘야 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금융소외계층이 다시 시장 안에 들어와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원방안이나 교육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질좋은 서비스로 고객 마음 얻어야

금융당국도 금융회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거나 구조적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영역에서는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간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금융회사에 형식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금융회사가 열심히 고객에게 다가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회사들이 내 탓이 아니라는 변명으로는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 없고 고객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절박감을 가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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