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바꿔 이른바 `신분세탁`에 나서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본인여부를 확인할 때 주민등록번호만을 참고하는 점을 이용해 신용불량자들이 법원에 `호적 생년월일 정정소송`을 내 다른 사람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12일 관계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일부 신용불량자들이 법원에 생년월일 정정소송을 낸 후 새로운 주민번호를 부여받고 기존 주민번호로 돼 있는 신용불량자에서 해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호적상 생년월일 정정 신청자에 대해서는 행정전산망을 통해 전과조회를 비롯한 범죄사실 등을 확인할 뿐 금융회사의 연체정보나 신용불량자 정보는 점검하지 않고 있어 신불자( 信不者)들은 쉽게 새 주민번호를 부여받고 있다.
신불자들은 새 주민번호를 받은 후 거래금융회사에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 금융기관에서는 변경사실을 알 방법이 없다. 이에 따라 신불자들은 변경된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새로운 계좌를 개설하고 정상적으로 금융거래를 하고 있다. 이른바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통한 `신분세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난 2002년 한해동안 법원에 주민등록번호 정정신청을 한 건수는 모두 3,109건으로 이 가운데 1,728건이 변경승인을 받았다.
한 인터넷 신용불량자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P씨(28)는 “생년월일을 바꾸는 수법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바꾼 사람이 상당수 있다”며 “주변에서도 이 같은 방법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불자들은 금융회사의 채권추심을 벗어나기 위해 주민등록말소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사람을 동원해 이들이 주거지가 변경됐다고 동사무소에 신고하면 행정기관은 이들의 주민등록을 직권 말소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공식적으로 주거지가 없는 것으로 표시돼 빚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신용불량자 구제책만을 내놓자 이들의 도덕적 해이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이들의 편법행위에 대한 엄격한 처벌규정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의준기자 joyju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