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대표는 한나라당 출신으로 이번까지 두 번이나 민주당 당권을 쥔 독특한 정치인이다.
한번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민주당(당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말을 갈아탄 뒤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마시고 2008년 초 추대 형식으로 대표가 됐고 이번에는 불꽃 튀기는 경쟁 끝에 대표직을 거머쥐었다.
그는 1970년대 서울대 재학 중 반독재투쟁을 한 재야운동권 출신이다. 유신체제가 종식된 후 영국유학을 다녀와 인하대와 서강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뒤 광명에서 내리 3선을 했다. 당내 소장개혁파의 리더로서 당 대변인을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2002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로 당선되면서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경기지사 시절 거리로 따지면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돌 만큼 외자유치를 위해 세계를 누볐던 일화는 유명하다.
경기도지사에서 물러난 뒤 대권도전을 노렸지만 2007년 3월 대선후보 경선방식을 놓고 한나라당의 한계를 지적하며 탈당을 결행, 정치인생의 최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어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가도에 합류해 민심에서 우위를 보인 점을 발판으로 후보에 도전했으나 조직기반이 취약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정동영 당시 최고위원에게 고배를 마셨다.
2008년 초에는 과도기 대표로서 총선을 지휘하며 정치1번지인 서울 종로 출마로 배수진을 쳤으나 박진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했다. 이어 7ㆍ6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정세균 대표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춘천으로 내려갔다.
그 후 2년여간 춘천에서 칩거했으며 2009년 4월과 10월 재보선에서 각각 홍영표 후보와 이찬열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6ㆍ2지방선거에서 김진표 민주당 후보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의 단일화를 끌어냈다.
그는 이번 전대 선거기간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전력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한나라당에 있을 때 '평양에나 가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했다"며 정면돌파에 나섰다.
손 대표는 신중한 언행으로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경선기간 토론회에서 타 후보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적극적 대응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손 대표가 "앞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통합하는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밝힌 만큼 민주당 내 다양한 계파와 주장을 통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