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감자가 유럽 산업혁명에 기여했다고?

■ 당근,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리베카 룹 지음, 시그마북스 펴냄)


녹색채소 셀러리에 최음 효과가 있다는 소문에 정부(情婦)였던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에게 셀러리 수프를 먹였다. 18세기의 전설적인 바람둥이 자코모 카사노바는 정력을 키우기 위해 셀러리를 먹었다고 한다.

가지는 르네상스 시기 유럽에서 '발광 사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가지를 먹는 사람들에게 발작을 일으키게 한다는 이유였는데, 가지 특유의 자줏빛에 매혹된 채소 연구가가 허겁지겁 가지를 먹었다가 발작을 일으켰다는 괴담 때문이었다.

미국의 대중적 과학저술가인 저자가 인류와 가까운 20가지 채소를 매개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뒷얘기를 풀어냈다.

책 제목은 트로이 목마에 몸을 숨긴 군인들이 당근을 씹어먹으며 이뇨작용을 억제하고 설사병을 다스렸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많이 먹으면 졸립다는 상추는 실제로 고대부터 수면제로 추천돼 '취침 시간 전에 한 사발을 먹으면 그날 밤 곯아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야생 상추의 유액에 든 테르펜 알코올이 사람들을 졸리게 해 심지어 '상추아편'이라고까지 불렸다. 중세 영국에서는 상추 유액으로 만든 환(丸)이 수면 유도제로 쓰였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순한 진정제로도 사용됐다.

유럽인들이 중세 암흑기 빈곤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단백질이 풍부한 콩 덕분이었다고 한다. 반면 감자의 운명은 기구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인에 의해 일본에 상륙한 감자는 19세기까지 소 사료만 쓰이는 굴욕을 당했다. 하지만 19세기 말 미군 제독이 천황에게 시식을 권한 것을 계기로 몸값이 뛰어올라 현재는 각국 식탁을 점령하게 됐다. 영양가 높고 재배가 수월한 까닭에 감자는 18~19세기 유럽의 베이비붐 촉발과 산업혁명에도 기여했다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옥수수와 흡혈귀의 관련사도 흥미롭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으면 니아신(niacin)이 부족해 져 '펠라그라'라는 결핍증에 걸리게 된다. 1997년 '영국의학사원 저널'에 수록된 논문에 따르면 펠라그라의 증상인 햇빛에 대한 민감성, 혀 부종, 치매, 장기적 소모성 사망으로부터 유럽 흡혈귀 전설이 유래됐다고 한다.

책은 '멜론, 마크 트웨인의 도덕관념을 약화시키다''토마토, 존슨 대령을 죽이는 데 실패하다''오이, 비둘기인 척하다' 등 흥미로운 부제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한때 '미확인 식물'로 외면당하던 채소가 식문화 발달과 함께 '천연 영양제'로 각광받기까지의 변천사가 흥미진진하다. 1만5,000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