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여 살려놨는데…" 건설업계 M&A 공포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정상화의 길에 막 들어선 건설업체들이 이번에는 M&A(인수.합병) 공포에 떨고 있다. 남광토건은 새 주인이 회사 공금을 빼돌려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적대적 M&A 위기에 처해 있고 최근 워크아웃을 졸업한 대우건설과 쌍용건설은 단기 투기자본에 회사가 넘어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2002년 4월 건설업체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하며 환호했던 남광토건은 2년6개월여만에 다시 심각한 경영권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 작년 7월 회사 인수를 주도했던 이희헌 대표이사가 공금횡령 혐의로 지난달 구속되면서 다시 M&A 시장에 나왔는데 주가가 급락한 틈을 타 코스닥 등록업체 알덱스가 지분 매입에 나서 사실상 대주주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우리사주조합 지분(9.8%) 및 대주주인 골든에셋플래닝 지분의 향방에 따라 적대적 M&A를 피할 수도 있지만 자금난에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남광토건이 알덱스측에 `백기 투항'할 것이란 관측도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화학업체인 알덱스가 건설 경험이 전무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M&A를 재료로 가격이 급등한 주식을 팔아 차익을 실현하거나 인수하더라도 곧바로 웃돈을 받고 되파는 `치고 빠지기식 M&A'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재 매각을 추진중인 대우건설과 쌍용건설도 이같은 걱정에서 자유롭지 않다. 작년 말 워크아웃을 졸업한 대우건설은 자산관리공사를 비롯한 채권단이 최근주간사를 선정하고 매각을 추진중인데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박세흠 대우건설 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단기 수익을 노린 투기자본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건설업에 애착이 있는 곳에 매각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따라 대우건설에서는 노조를 중심으로 종업원지주회사제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지만 워낙 덩치가 커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임직원이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지고 있는 쌍용건설은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여전히 변수는 많다. 지난 10월 워크아웃을 졸업한 쌍용건설은 직원의 3분의2를 구조조정하고 급여도대폭 삭감되는 등의 고통을 감내하며 정상화됐다. 특히 작년 3월에는 임직원들이 퇴직금까지 털어 당시 주가(2천500원 안팎)의 두배인 5천원에 자사주를 매입, 회사를 위기에서 구했고 이 일을 계기로 채권단은 대주주가 가지고 있던 우선매수청구권을 임직원들이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임직원은 채권단 지분(50%)의 절반 정도를 우선매수청구권을 통해 인수할 수 있는데, 이는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선정된 우선협상대상자가 제시한 가격으로 우선협상대상자보다 우선해 주식을 살 수 있는 권한이다. 따라서 만약 입찰참여자가 고의로 인수 가격을 높게 써내면 자금 여력이 달리는임직원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어 회사가 외부에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것이 M&A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또한 보유 지분의 절반만 임직원에 넘긴다면 나머지 주식은 경영권 프리미엄이사라져 가격이 낮아질 수 밖에 없어 채권단이 이를 꺼린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업계에서는 매각 주체가 가격을 매각의 최우선 기준으로 고려하는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이같은 고민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즉, 인수 가격 외에도 인수자의 사업계획과 자금의 건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인수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격만을 염두에 둔 매각의 폐해는 최근 대표이사가 구속된 남광토건과 한신공영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회사는 모두 인수자가 계약금만 걸어놓은 채 회사내부 자금을 빼돌려 잔금을 치르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넘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매각 주체 입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지만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 살린 기업들이라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회사를 발전시킬 건전한 투자자에게 매각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진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