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된 원인중 하나는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쌓였던 무역적자였다. 공산품분야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출을 할 수록 수입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잘못된 무역구조가 빚은 결과다.한국경제연구원(원장 좌승희)이 17일 발표한 「수출경쟁력변화와 수입유발구조분석」은 이런 문제를 따져보고 몇가지 대안을 모색했다. 무엇보다 기계류 등 자본재 분야에서 새로운 수출유망품목을 찾아내는 작업이 절실하다는게 요지다. 또 선진국시장에서 중국·동남아 등의 저가공세에 밀려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는 품목에서 특화할 수 있는 전략상품을 찾아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출경쟁력 하락이 문제다=미국과 일본에서의 시장점유율 하락이 우리나라 수출경쟁력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상품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89년 4.18%에서 93년 2.95%로, 일본시장 점유율은 89년 6.17%에서 95년 5.14%로 급락했다. 이 추세를 품목별로 나눠보면 문제의 핵심이 드러난다. 의류·완구·가구·사무용품 등 상품분류상 「잡제품」으로 분류되는 품목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89년 10.72%에서 95년 3.39%로 급락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국의 시장점유율이 9.40%에서 22.0%로 급증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미국에서 우리의 주요 수출품시장이 중국에 빠른 속도로 잠식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92년을 기점으로 잡제품이나 공산품시장을 이처럼 중국에 내주는 바람에 전체적인 수출증가율이 둔화됐지만 대신 반도체와 자동차 등 일부 품목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덕분에 한동안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부 품목의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외국의 경제환경변화에 따라 수출이 큰 영향을 받는 취약한 구조가 형성됐고 결국 IMF 구제금융 신청직전 반도체가격 하락과 자동차수출 감소로 인해 무역적자가 급증하면서 위기로 내몰렸다.
◇미·일 의존적인 수입유발구조가 근본원인이다=주요 수출품의 생산구조가 미국이나 일본의 자본재와 원자재·소재·부품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쪽으로 고착화, 무역역조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
97년을 기준으로 하면 자본재의 경우 일본의존도가 32.0%, 미국의존도가 31.6%에 이른다. 두 나라에 대한 의존도가 전체 자본재수입의 63.6%에 달하는 기형적인 구조다. 특히 정밀기계는 각각 45.3%, 23.6%에 이르며 수송기계는 16.8%, 47.6%로 미국편중이 심각한 지경이다. 한국의 주요 생산품목중 일본에서 생산되는 상품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품목으로는 TV·라디오·VTR 등 가전제품과 시계·반도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생산구조는 잡제품·공산품 등 중국에 쉽게 추월당할 수 있는 품목의 생산구조를 탈피, 다양한 자본재와 소재 부품 등 기계류 생산으로 신속히 이행하여 이를 수출산업으로 성장시키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르고 수출물량이 늘었다지만 다양한 분야의 기계류 생산구조로 이행하지 못함으로써 경제성장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바람직한 수출구조 달성을 위한 과제=우선 자본재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 공산품 등 중국에 추월당한 분야를 자본재에서 만회해야 하는데 이는 기술집약적인 고부가가치 분야이면서 당분간 중국에 쉽게 추월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일본이 상대적으로 비교우위를 가졌던 산업분야를 우리나라가 수출산업화하고 이를 통해 중국과 국제분업구조가 유사해진 분야를 중국에 넘져준다는 의미다.
자본재 산업은 대부분 인적자본 집약적이며 기술집약적, 숙련노동 집약적이다. 사람을 키우는 노력이 절실하다.
또 일본의 자본재산업을 과감히 유치하기 위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일본의 자본재산업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전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도 있다.
지금 중요한 과제중 하나는 주력수출품목 육성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는 일이다. 수출유망품목을 선별적으로 지원하여 집중육성할 수 있는 정책수단, 즉 금융이나 조세혜택의 효과는 이제 시장이 개방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효과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수출이 유망한 품목은 정부정책보다는 자연스레 시장에서 결정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과거와 같이 특정산업만 육성하는 정책은 대상선정 자체가 어려운데다 선정에서 배제된 산업이 오히려 위축되는 부작용만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 정책간섭이 없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중국에 추월당한 수출산업분야에서도 활로는 있다. 공산품이나 완구·의류 등 잡제품에서 비록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지만 해당 산업 안에서도 특화할 부분이 적지않다. 특화가 가능한 품목을 적극 개발할 필요가 있다. 【정리 = 손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