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과학기술자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허남회 박사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5월 수상자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허남회 박사는 지난 97년 우리나라에서는 볼모지나 다름 없었던 거대자기저항((Colossal Magneto ResistanceㆍCMR)분야 연구에 도전, 관련 국내 연구를 주도하는 한편 세계에서 처음으로 CMR재료에서 `스핀유리 재투입(reentrant spin glassㆍRSG)`현상을 발견하여 새로운 메커니즘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실험적 증거를 제시했다. 허 박사는 지난 3년동안 무려 40여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으며 특히 최근에 물리학계의 최고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레터(Physical Review Letter)에 발표된 두 편의 논문은 CMR현상의 기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돌파구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층상 구조를 갖는 금속 탄화물과 관련된 일련의 연구들은 새로운 자성 재료를 개발하는데 더 없이 소중한 연구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CMR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전기를 전달해주는 매체인 전자는 자석이 있는 부분을 지날 때 저항을 받게 된다. 이것은 자석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이 전자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자(전기)가 흐르는 도체에 자기장을 가하게 되면 저항은 높아지게 된다. 그런데 자기장을 가하면 오히려 저항이 크게 감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중에서 저항이 1,000% 이상 감소되는 현상을 CMR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상은 층상 구조를 갖는 망간 산화물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구리계 산화물에서 발견된 초전도 현상과 언뜻 보면 비슷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원래의 저항이 1,000인 재료에서 자기장에 의해서 1로 줄어드는 현상이 CMR현상이라면 초전도 현상은 저항 자체가 어떤 온도 이하에서는 아예 없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CMR 물질개발의 중요성= CMR 현상 자체는 이미 지난 50년대 발견됐지만 당시만 해도 이러한 물성을 응용할 분야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급격한 정보혁명이 진행되고 있어 더 감도가 높고 응용의 폭이 넓은 새로운 자성 재료의 개발이 이미 세계 곳곳에서 경쟁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우리가 늘 갖고 다니는 각종 마그네틱 카드에서부터 컴퓨터부품 등 자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자성 재료는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빠른 정보처리 속도의 요구도 CMR 물질 개발을 부채질하고 있다. 현재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자기저항헤드나 자기 메모리소자로 활용되고 있는 금속계 다층박막으로 이뤄진 자기저항 재료를 망간 산화물로 이뤄진 CMR 재료로 대체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100배 이상의 빠른 정보처리 속도를 얻게 된다. ◇새로운 CMR 메커니즘 규명= 새로운 CMR 물질의 개발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의 기초가 되는 메커니즘의 규명작업에는 별 진전이 없었다. 특이한 점은 CMR 특성 자체가 기존 자성 재료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망간 산화물에서만 발견됐으며 메커니즘도 오래 전에 알려진 `이중교환(double exchange)`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허 박사는 CMR 물질인 망간 산화물에서 `스핀유리 재투입(RSG)`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자성 원자들의 스핀이 특정 방향과 각도를 갖지 않으며 혼합물 내에서 분산하는 이 현상은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은 스핀유리 현상 자체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한편 망간 산화물을 이용한 CMR 물질 개발의 가능성을 한층 높여줬다. ◇국내외 관련 특허만 5개= CMR과 관련 허 박사는 국내 3건, 해외 2건 등 총 5건의 특허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관련 논문 40여편 중 대부분인 36편이 해외 학술지에 게재됨으로써 볼모지였던 국내 CMR 연구성과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러한 우수한 연구결과로 허 박사는 CMR 관련 심포지엄을 국내에서 개최해 열악했던 국내 CMR 관련 연구 인프라를 확충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인터뷰] "일 즐기는 뛰어난 연구인력 많이 나와야"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기존 다층박막으로 이뤄진 자기저항 재료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의 개발입니다. 그 중 하나가 CMR재료 분야입니다. 이번 결과를 토대로 우선 나노 크기를 갖는 CMR재료를 이용하는 연구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허남회 박사는 자신도 자신의 연구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자신감 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초전도 연구를 10년 정도 했죠.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 구리 산화물과 CMR 특성을 보이는 망간산화물은 금속만 구리에서 망간으로 바뀌었을 뿐 전체적인 구조는 아주 흡사합니다” 그러나 허 박사는 지난 2000년 연구비가 갑자기 40% 정도 줄때는 진짜 입이 바짝 마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다행히 연구원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그때는 정말 아찔했다”며 “좋은 연구인력을 확보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특별한 대접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과학을 권유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일을 즐기고 싶다면 절대 진리에 몰두하고 싶다면 과학을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종교인이 아니면서 이 같은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직업중 하나가 과학자라고 허 박사는 주장했다. 특별한 취미나 여가활동은 없지만 항상 즐겁게 잘 지낸다는 허 박사는 “고생하고 있는 선후배 동료 연구원들, 아내 그리고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허남회 박사 약력 ▲58년 출생 ▲81년 서강대 화학과 ▲87년 미 일리노이대 무기화학박사 ▲95~96년 미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방문연구원 ▲98~2000년 충남대 화학과 겸임교수 ▲88년~현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98년~현재 창의적연구진흥사업단장 <조충제기자 cjch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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