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기인 2005년부터 인터넷상에서 유행한 이 말을 기억하는지. 당시 사람들은 장사가 안돼도, 취직이 안돼도, 심지어 길을 가다 넘어져도 '다 대통령 탓'이라는 이 농담을 남발했다.
이 말의 생명력은 꽤 긴 편인데 실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상만을 바뀌어 여러 차례 사용되고 있다. 즉,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고, '이게 다 박근혜 때문'이다. 얼핏 비꼬거나 조롱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유행어에 담긴 진실은 사실 하나다. 대통령, 그리고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바람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 말이다.
그런 국민들의 바람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는 규모를 키워왔다.
국가·지방 공무원 수는 1988년 69만 4,000명 수준이었지만 꾸준히 증가해 현재 대략 100만 명에 이른다. 국민 50명 중 1명꼴인 셈이다. 국가 총예산 역시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국내총생산(GDP)이 1,000조 원 규모인데 2015년 국가 총예산은 그 30%가 넘는 375조 원에 이른다.
정부가 이토록 많은 인원을 거느리고 큰 예산을 다룬다는 의미는 그만큼 국민의 삶에 관여하는 부분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정부의 무능함을 새삼 다시 확인했고 이후로도 정책의 실패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국민들의 지지를 바라기는 요원한 일이다.
한국조직학회에서 활동하는 16인의 행정학자들이 정부 조직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담아 책 '대한민국 정부를 바꿔라'를 펴낸 것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서일 테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무너진 희망을 바로 잡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에 대해 면밀히 파헤친 책이다.
다루는 주제는 광범위하다. 저자들은 △오랜 기간 이어진 정부와 공무원들의 형태는 무엇인가 △반복되는 문제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딜레마에 빠진 변화관리의 현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변화와 혁신의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라는 4가지 주제를 설정하고 각자 연구 분야에 따라 핵심 부분을 파고들었다.
공무원의 '무사 안일'에 대한 시각에서부터 정실주의의 문제, 공직자의 사생활, 지방분권의 현재,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공존법, 100대 1 과열 경쟁으로 치닫는 공무원 선발 문제 등을 심도 있게 다루며 공무원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문화의 실체를 낱낱이 밝힌다.
더 큰 장점은 단순히 문제에 대해 쓴소리를 늘어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름의 해법까지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공무원의 무사 안일한 태도가 너무 잦은 조직 개편에서 비롯한 전문성 부족에 있다는 점을 들며 전문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인사제도가 공무원의 의욕을 사라지게 한다며 성과 위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변화와 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통령과 장관, 개혁주도기관이라는 3개 층의 리더십이 제대로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확고한 의지와 책임감을 가진 꾸준한 개혁이 필요하다. 대부분 새겨들어야 할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처방들이다.
비단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공무원들뿐 아니라 국가·정치에 관심이 깊은 일반인들이 곁에 두고 읽어도 좋겠다.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