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쿠르디의 희생 '변화'를 촉구한다-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




세상이 외면한 어린아이의 싸늘한 주검. 궁극의 자유와 평온함을 이제야 찾은 듯 해변에 엎드린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은 온 세상을 비통함과 자괴감에 젖어들게 하기 충분했다.

쿠르디는 정치적 불안정으로 붕괴된 시리아의 사회 시스템과 인류애를 도외시한 유럽연합의 폐쇄적 난민정책이 결합돼 낳은 희생양임에 틀림없으리라.

한없이 평온해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어른들의 만성적인 안전 불감증과 무관심 그리고 사회적 안전 시스템 미비로 '한국형 쿠르디'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희생되고 있다. 어른들의 탐욕과 무책임으로 만연한 안전 불감증은 '세월호 침몰' '마우나리조트 붕괴' 등과 같은 대형 참사를 일으켜 이 땅의 많은 자녀가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부모의 품을 떠나가게 했다. 연간 1만5,000명에 육박하는 어린이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어린이 교통사고는 만성질환처럼 돼버린 지 오래다.

쿠르디의 주검 사진에 우리 모두의 가슴이 미어졌듯 죄 없는 어린이들이 안전과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소리 없이 희생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안전정책 패러다임이 어린이의 눈높이조차 맞출 수 없다면 어떻게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빈틈없이 견고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쿠르디 사태를 지켜보며 누군가의 희생이 있고서야 비로소 반성과 변화의 필요성이 논의되는 수동적 시스템의 한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특정 사건에 여론이 들끓으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떠들썩하게 움직이다가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흐지부지되고 잊히는 안타까운 행태는 어찌 보면 망각의 동물인 인간의 태생적 한계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효율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두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어린이 교통사고가 타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분명한 인식을 갖고 만성적 안전 불감증에 냉철하고 무거운 철퇴를 스스로 가해야 비로소 더 이상의 '한국형 쿠르디'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쿠르디는 아무 죄 없이 죽음을 맞았지만 그의 죽음이 많은 이에게 '인류애'라는 세 글자를 되새겨보게 했듯이 우리 사회도 그간 희생된 수많은 쿠르디를 교훈 삼아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어린이를 지키기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이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곧 민족의 명절 추석이다. 추석을 맞아 주위를 둘러보며 안전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은 없는지 먼저 다가가 점검해보는 뜻깊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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