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래 그 나물에 그 밥이네"

미디엄 템포 발라드 내세운 여성그룹 대거 등장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 여성그룹 씨야의 데뷔곡 '여인의 향기'가 흘러나온다. 20대 중-후반의 여성 셋은 노래를 무심결에 따라부른다. "이 노래 부른 가수 누구지? 버블 시스터즈(4인조)인가?" "아냐, TV로 뮤직비디오 본 적 있는데 새로 나온 씨야(3인조)인가? 가비엔제이(3인조)인가 그럴 걸" "비슷한 노래하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4인조)란 팀도 있더라" 최근 대중음악계의 한 기류로 여성보컬 그룹의 대거 등장을 꼽을 수 있다.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곡을 내세운 남성 보컬그룹 SG워너비가 작년 음반 판매량 40만장을돌파,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대박'을 터뜨리자 너도나도 트렌드에 동참한 탓이다. 앞서 소개한 여성그룹의 노래 역시 '명곡'이란 평가를 받으며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 랭크됐다. 하지만 미디엄 템포의 익숙한 멜로디, 거의 동일한 멤버 구성, 유사한 창법과 음색으로 정작 '그 노래가 그 노래'란 게 대중의 평가다. 가수와 노래를 짝짓기란 더욱 힘들어진 형국이다. ◇가창력과 검증된 기획이 선수층 두텁게 해 일단 칭찬부터 해보자. 기획 의도는 긍정적이다. 가수를 캐스팅하는 과정에서오디오보다 비디오를 첫손에 꼽던 음반 제작자들의 마인드가 바뀌었다. '가수라면 무조건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도덕적 기치'가 고개를 들었다. 왕도를 걷겠다는 의도다. "요즘은 가수의 얼굴이 안 예뻐도 된다. 방송을 안 시켜도 좋은 노래를 잘 부르면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뜰 수 있다"는 게 음반제작자들의 이구동성이다. SBS TV '생방송 인기가요'의 백승일 PD는 "비슷한 스타일이지만 모두 인기를 얻고 있는 건 노래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라면서 "또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대거 제도권 시장에 진입하며 선수층이 두터워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보통 음반제작자들은 대박을 노리고 이런 기획을 하는데 검증된 콘셉트를활용한다는 건 시장의 요구에 맞춰가는 것이니 비난할 일이 아니다. 많은 돈을 투자한 그들도 공급이 많아질수록 대박 확률이 떨어진다는 리스크가 있다. 결국 성공과실패는 시장이 판단하는 것이다. 어떤 그룹이 성공할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고덧붙였다. ◇특정 작곡가의 쌍둥이 노래 판쳐 문제는 이제부터다. 검증된 시장에 뛰어들다보니 '대박 사례'를 선보인 특정 작곡가에게 의뢰가 쇄도한다. 미디엄 템포의 쌍둥이 발라드곡이 대거 양산된 원인 중의 하나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SG워너비의 '광'을 만든 작곡가 조영수, '죄와 벌'의 작곡가 김도훈, '살다가'의 작곡가이자 그룹 바이브 멤버인 류재현 등은 SG워너비와 같은 소속사인 씨야의 1집에 그대로 참여했다. 이중 조영수와 김도훈은 3~4월께 차례로 선보일 SG워너비와 김종국의 음반 작업도 하고 있다. 역시 SG워너비의 '입술만 깨물고 있죠' '땡큐'를 쓴 작곡가 민명기는 가비엔제이의 1집 수록곡 '해피니스' '그래도 살아가겠지'를 연이어 내놓았다. 작곡가 집단네가네트워크가 선보인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윤일상, 김건우, 이민수 등 다른 작곡가들이 작업했지만 역시 타이틀곡 '다가와서'는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곡이다. 한 작곡가는 "제작자 대부분이 SG워너비 같은 곡을 써달라고 주문한다. 스스로미디엄 템포의 노래는 그만 쓰자고 생각해도 수요자의 의도대로 공급하게 된다"고푸념한다. 결국 모험을 피하고 안전한 흥행을 노리겠다는 음반제작자들의 상술은 음악계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네티즌도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SG워너비 나오고 가비엔제이까진 신선했는데 요새 음악 스타일이 갈수록 거기서 거기네요"(lovelyhuskey), "SG워너비가 미디엄 템포를 유행시켰죠. 요즘 다 SG워너비 식의 발라드 느낌만 나면 노래 잘 부르는 줄 알아요. 한국 대중가요가 어찌 될는지"(1750664_)라는 반응이다. 이런 목소리도 대중음악계가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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